|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홍승면)는 31일 강씨와 그 가족이 유서대필 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가와 당시 수사 검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필적 감정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에서 국가가 강씨와 그 가족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10억1000만원으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에 비해 강씨와 강씨 부모에 대한 국가의 배상액을 각각 1억원과 1억6000만원을 증액한 8억원과 2억원으로 판단했다. 또 강씨 부인에 대해선 1심과 같은 1억원을 위자료로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1심에서 각각 500만원 인정됐던 강씨 자녀들에 대해서도 “사건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법률상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1심 판결 중 국가가 이 부분에 대한 항소를 하지 않아 1심 액수가 유지됐다.
다만 강씨가 재심 무죄 확정 후 형사보상금을 국가로부터 수령한 부분과 부모 상속분 등을 감안해 강씨에 대한 국가의 실제 지급액을 6억8271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1심 액수인 5억2937만원에 비해 1억5333만원을 오른 금액이다.
강씨 위자료 7억→8억 증액…국가 책임 더 높게 봐
재판부는 “강씨는 1991년 27세 나이로 2015년 5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 이후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살방조자로 지탄을 받으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가족들도 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고통을 함께 했다”며 배상액 산정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사건 조작 당사자들인 수사 검사들과 필적 감정인은 면죄부를 받았다. 특히 1심이 배상책임을 인정했던 필적 감정인에 대해선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번 판결로 당시 사건을 주도했던 강신욱 전 서울지검 강력부장(전 대법관)과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전 검사(현 변호사), 국과수 직원 김모씨는 모두 강씨에 대한 배상책임을 피했다.
재판부는 “강씨와 가족들이 재심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제기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거나 이를 위법수사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그 자백이 주요한 증거가 돼 유죄가 선고된 사건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강씨 측은 “국가를 제외한 직접 행위자들의 책임을 모두 면제해줬다”고 거세게 반발했다.강씨 법률대리인단은 “실체적 판단 없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조작 당시부터 3년 내에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3년이면 강씨는 희대의 악마로 사법적 평가를 받아 감옥에 있을 때이고 유서대필 사건을 수사·기소한 검사들은 모두 현직에 있을 때”라고 밝혀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유서대필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야 했던 강씨가 그 세월 속 어느 시점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대리인 “법원, 가해자 또 옹호해 피해자에 다시 상처”
대리인단은 또 “소멸시효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리”라며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경우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이어 “과거사 사건의 경우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기까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는 장애사유를 인정해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법리”라며 “강씨는 2015년 재심 무죄 확정 판결을 통해 비로소 필적감정 허위성을 법원에서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많은 과거사 사건에서 사법부는 부정의의 최종적 마감자였다”며 “회복절차를 역시 사법부가 부담해야 하지만 오늘 판결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입혀 정의 회복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참담하며 절망스럽다”고 이번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지난 1991년 벌어졌다. 강씨는 지난 1991년 5월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자살한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이후 법원에서 징역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유서 필적과 강씨 필적이 같다’는 국립과학연구소의 필적 감정이 결정적이었다.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의 잇단 분신이 계속되자 정권 차원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조작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조사를 통해 유서 필적이 강씨가 아닌 김기설씨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를 내놨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 감정을 다시 의뢰했고 2007년 11월 김기설씨 필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이후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9월 서울고법이 재심 결정을 했지만 검찰이 항고했고, 대법원은 2012년 12월에야 재심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2015년 5월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