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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쏘아올린 '약물 재창출'…드러그 리포지셔닝

노희준 기자I 2020.03.09 17:32:14

신약 개발에 10년~15년. 약물 개발 시간 없어
과거 약물 패자부활전, 기존 약물 재발견 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탈모 치료제 미녹시딜 등
신약 개발 생산성 갈수록 떨어져 불가피한 전략

(자료=수출입은행)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신약 개발에 사용했던 ‘약물’을 재소환하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19 약 개발에 렘데시비르 등 기존 약물이 동원되면서다. 약물 재창출은 임상에서 효과가 부족해 실패한 약물이나 시판되고 있는 약물을 다시 평가해 새로운 약효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9일 코로나19 환자의 주치의 모임인 중앙임상TF(현 중앙임상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효과가 확인된 코로나 치료제는 없다. 중앙상임위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자, 중증 환자의 경우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나 말라리아 약제 ‘클로로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여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이들 약물 역시 코로나19에 대한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 신약 개발 기간 10~15년

결국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신약 개발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은 크게 후보물질 탐색(5년), 전임상(동물실험)(3년), 임상시험(6~7년) 단계로 진행된다. 전체 개발기간은 보통 10년~15년이다. 하지만 신종 코러나 바이러스는 지난해 연말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연구는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다.

이 때문에 전세계는 기존 약물에서 효과가 있을 법한 약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효과 입증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약물 재창출(드러그 리포지셔닝) 전략이다. 이는 시판중인 약물이나 임상 후기에서 약효 미달 등으로 탈락된 신약 후보물질의 새로운 적응증(약물 치료 대상)을 찾아 신약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로 기대되는 렘데시비르가 약물 재창출 전략을 쓰는 대표적인 경우다. 렘데시비르는 원래 미국의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사가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하려다 임상 3상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한 약물이다. 다만 코로나19 치료제가 없는 가운데 미국에서 렘데시비르가 코로나바이러스 증식을 막는다는 것이 동물실험에서 확인되면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코로나19 약물 재창출 연구에 나섰다. 미 식품의약품안전국(FDA)에서 허가를 받아 안정성이 입증된 약물에서 코로나19에 효능이 있는 약물을 찾고 있다. 약물 재창출 전략을 쓰면 초기 신약 개발이나 안전성 확보 등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자료=수출입은행)
◇ 갈수록 개발 비용 ↑ 허가 약 ↓

약물 재창출은 불가피한 전략이 되고 있다. 갈수록 제약기업 연구개발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후보물질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데다 임상 시험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약물의 안전성 규정이 강화되면서 신약 개발 실패 확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은 1970년대 평균 1억 4000만달러(1700억원)였지만 1980년대에는 3억 2000만달러(3900억원), 1990년대 8억달러(9600억), 2000년대 초반에는 12억달러(1조4000억원)로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은 연평균 40개에서 20개 미만으로 줄었다.

약물 재창출로 탄생한 신약은 적지 않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대표적이다. 화이자는 이 약물을 원래 고혈압,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상 2상에서 약효가 부족해 약물의 투여량을 늘리기 위한 임상1상을 다시 하면서 발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발기부전증 치료제로 방향을 틀었다.

탈모 치료제로 쓰는 ‘미녹시딜’의 경우는 두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탄생한 약이다. 화이자는 애초 이 약을 위궤양 치료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혈관 확장에 더 효과가 있는 게 밝혀져 고혈압 치료제로 약의 쓰임새를 바꿨다. 그런데 이후 털이 나는 일종의 부작용이 보고되자 화이자는 또한번 미녹시딜의 적응증을 바꿔 결국 탈모치료제를 만들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약물 재창출을 통해 신약 개발에 나서면 이미 전임상이나 임상 초기 단계를 거친 약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약물 필요량을 결정하는 임상 2상부터 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뿐만 아니라 안전성 문제에 따른 개발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임상 1·2·3상의 성공확률은 평균 각각 64.5%, 32.4%, 60.1%다. 기초 연구 개발 단계에서 있는 5000개~1만개의 후보물질 중 최종 신약승인 허가를 받고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1개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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