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KDB산업은행이 현대증권(003450) 매각 무산에 따라 2000억원 규모의 신탁담보대출에 대한 상환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경우 산업은행이 직접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메가폰’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20일 금융권 및 IB(투자은행)업계 따르면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무산으로 인해 오는 23일 만기도래하는 1986억원 규모의 신탁담보대출 상환 여부를 현대그룹과 논의하고 있다. 만기가 임박한 만큼 어느정도 상환 기한에 여유를 주되 현대상선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현대증권 매각은 산은이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상선이 대출금을 갚을 경우 현대증권 매각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현대증권 지분 14.9%를 자산으로 담고 있는 신탁에 대한 기한이익상실이 선언되고 채권자인 산은의 담보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재매각 진행 이행을 위한 구속력있는 약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거론되나 재매각이 진행된다면 매각 주도권은 산은이 쥐는 방안이 더욱 유력시된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된 책임이 현대그룹 측에도 어느 정도 있다는 판단이다. 현대상선이 추후 현대증권을 되사오기 위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요구하면서 파킹딜(Parking Deal)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데다 현대그룹과 자베즈파트너간 이면계약 의혹 등도 불거진 상태다. 산업은행은 앞서 올해 초 사모투자펀드(PEF)를 조성해 현대그룹으로부터 현대증권을 분리해 매각을 직접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유동자금 긴급 지원을 위해 펀드조성보다 신탁방식으로 구조를 전환했었다. 현대상선이 보유 중인 현대증권 지분 22.4% 중 14.9%를 신탁에 담고 나머지 지분도 함께 팔 수 있는 동반매도권(Drag-along)조항도 포함했다.
산업은행은 신탁자산과 담보로 잡은 나머지 지분을 담보로 지난 4월 23일 현대상선에 2000억원을 대출해줬고 이후 7월 한차례 만기연장을 했었다. 추후 매각이 완료될 경우 지급된 대출금을 상환받을 계획이었다. 이후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주관사로만 참여했고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의사결정은 모두 현대그룹이 주도했다. 신탁 구조는 현대증권 지분의 소유권은 신탁으로 이전되지만 신탁의 소유권은 수탁자인 현대상선 측에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증권 매각을 주도할 경우 매각지연 등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어 산업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려면 직접 매각을 진행해 신속한 매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현대증권은 지난 6월 오릭스PE가 6500억원에 주식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대주주 변경 승인 절차만 남겨뒀으나 자베즈와의 이면계약 의혹 등이 불거지며 서류 미비로 넉 달째 지연돼 인수계약 종결기한(Long-Stop Date) 이후 오릭스PE가 계약을 해제했다.
현대그룹은 주력회사인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 해소를 위해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위해 현대증권 매각을 추진했다. 현대증권 매각이 성사되면 자구계획이행률이 110%에 달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매각 무산으로 90%로 낮아졌다.
현대증권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오는 23일 예정됐던 김기범 신임 대표 선임 등과 관련된 임시주주총회를 취소했다. 재매각 추진시점은 현재 대우증권 매각이 진행 중인 만큼 대우증권 매각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