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는 미국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자국 자금 70억달러를 의약품 구매 등에 자유롭게 사용해달라고 하면서도 선박 문제는 자국 사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동결자금 문제는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고, 정부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이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만큼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외교부와 이란 언론 등을 종합하면 이란을 방문 중인 최 차관은 11일 카말 하르라지 외교정책전략위원회(SCFA) 위원장을 만나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하르라지 위원장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직접 임명한 싱크탱크 수장이자 그의 외교 고문이다.
최 차관과 만난 하르라지 위원장은 면담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면담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강하게비판했다. 그는 과거에는 양국 관계가 좋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 제재를 준수하면서 70억달러 상당의 이란 자산이 동결되며 의약품을 사기 위한 돈도 인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선박이 억류된 이후에도 걸프해역에서 다른 배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다만 하르라지 위원장은 한국 대표단의 방문을 통해 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길 바란다며 관계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 기업들은 이란에서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제재 조치로 이란은 가전제품 등 자급자족 능력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 기업들은 상품을 직접 판매하기보다는 투자, 기술지식 이전, 제조업 참여 등의 형태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차관은 더 일찍 이란을 방문했어야 했다며 양국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도 “한국 내 동결자산은 양국관계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를 제거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의 불법행위가 이란 국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한국의 이미지 훼손이 심하다”며 “이란 의회 의원들은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차관은 한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분명한 의지가 있다며 조속히 억류된 선원을 석방시켜 줄 것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리프 장관은 “ 한국 선박 억류 사건에 대해 “사법적 체제 속에서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정부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환경 오염 혐의에 대한 조사와 법적 처분이 완료돼야 석방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박 억류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청하고 있는데 비해 이란 측은 순수하게 기술적 사안이라며 기본적으로 정해진 사법절차를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최 차관은 방문 마지막 날인 12일 마흐무드 헤크마트니아 법무부 차관을 만나 이 문제를 더 논의할 계획이다.
또 혁명수비대 고위직 출신으로 이란 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즈타바 졸누리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과 세이에드 모하메드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 등 각계 인사들도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번 선박·선원 억류 문제 조기 해결을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같은 만남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차관은 이날 일정을 마치고 카타르를 이동해 그곳 당국과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13일 귀국한다.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도 최 차관과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귀국 후 외교부 본부 채널과 주이란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교섭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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