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협회는 모집 활성화에 대한 대책 없이 성금 지급기준을 올리는 건 선심성 대책이라고 보고 있다. 또 북한 접경지역인 철원 이길리 마을 이주사업, 취약계층 특별위로금 등 정부 예산을 들여야 할 사업에도 성금을 활용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정 협의체에 청와대 인사까지 참석해 재난의연금의 정치적 중립성도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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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해 피해민에 국민성금 최대 2배…지급기준 상향 추진
18일 행정안전부와 전국재해구호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태풍이나 호우, 지진 등 자연재난이 발생하면 재해구호법에 따라 행안부 관리 하에 재해구호협회가 성금을 총괄해 배분한다. 행안부 장관 허가를 받은 모집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협회도 국민성금을 모집해 재해구호협회에 납입한 뒤 배분위원회에서 기준에 따라 이재민에게 배분하는 구조다.
현재 의연금은 재해 복구계획이 수립된 재해의 피해자에 상한액을 지원하고 있다. 자연재난으로 사망 또는 실종한 경우 유족에게 최대 1000만원을 지급하고 △1~7급 부상 500만원 △8~14급 부상이면 250만원까지 줄 수 있다. 또 주택은 전파나 유실의 경우 500만원을 주고 △반파 250만원 △침수 100만원 △지진소파 100만원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의연금품 관리 운영 규정을 개정해 의연금 지급기준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행안부는 이를 최대 2배 가량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망·실종자 유족에게는 2000만원을, 부상은 1~7급과 8~14급수에 따라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 주택은 전파나 반파 각각 600만원과 300만원, 침수는 2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다. 또 배분항목도 추가해 차상위계층 등 안전취약계층에게도 특별위로금 성격으로 최대 100만원을 주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번 방안은 정부 예산을 들이는 재난지원금을 현실화와 맞물려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8월 수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2배 늘리기로 정했다. 또 올해 20년만의 수해 피해로 성금이 많이 모여 피해 복구에 더 쓰이게 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 2003년 이후 20년 만에 큰 수해 피해로 모금 금액이 400억원이 넘었지만 배분 금액은 120억원에 그쳤다”며 “잔액이 있으면 모아놨다가 필요하면 활용하면 되지만, 올해는 좀 더 많이 모이고 잔액이 생겼으니 일정 비율을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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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국민성금, 정부 예산 아니다”…정치적 중립성도 흔들
그러나 재해구호협회는 정부가 민간단체에서 모으는 기부금을 예산처럼 사용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협회는 모금 활성화에 대한 논의 없이 지급기준만 높이면 국민성금을 필요한 곳에 쓰이기 전에 바닥이 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협회는 수해 피해에 1032억원을 모집했지만 배분액은 1245억원으로 협회 보유액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해성금은 등락폭도 커 특정 재해에 많이 모였다고 한 번에 다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더구나 자연재해 보상은 정부가 도맡아서 한다는 인식 탓에 최근 의연금 모집도 줄어드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협회는 정부가 마련한 의연금품 규정 개정 협의체의 청와대 참여도 문제 삼고 있다. 행안부는 이번 협의가 대통령의 지시로부터 시작했다는 이유로 협의체에 이례적으로 청와대 인사가 참여토록 했다. 행안부가 마련한 협의체 구성에는 외부 전문가와 모집기관, 행안부와 수해 피해가 컸던 강원, 경남, 경북, 전남 등이 포함됐다. 협회 관계자는 “재난에 대응하는 협회가 정권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청와대가 참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혹여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재난의연금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협회는 정부가 예산을 들여서 추진해야 할 사업도 의연금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민간인통제선 내 위치한 강원 철원 이길리 이주사업을 의연금을 활용한 추가 지원사업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또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보험인 풍수해보험이 있는데도 가입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의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 역시 정책 실패를 떠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번 협의를 위해 모인 외부 전문가들도 정부의 의연금 활용에 우려를 표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의연금은 공적 부조가 아닌 사적 부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사적 부조를 정부가 통제하는 공공재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정부 예산처럼 일괄 편성해서 배분하는 재난지원금과 달리 얼마나 들어올지 예상하기 힘든 성금의 지급기준을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행안부 “의결조율 중일뿐 확정 아냐”…전문가 “현장 더 믿어야”
행안부는 재해구호협회와 협의하는 단계로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참여하게 된 것은 이번 방안이 풍수해 종합대책 지시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철원 이길리 이주사업도 의연금을 특정한 기준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복원 등에 사용해보자는 의견을 듣고 시범사업으로 고민해 보자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2011년에 삭제된 소상공인 지급 기준 재산입 검토에 대해서도 “소상공인의 피해는 풍수해 보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다만 지자체에서는 이재민과 함께 소상공인을 더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아직 고려 사항이며 여전히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협의체 회의에 외부전문가로 참석한 이창길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재난관리 방향은 현장과 수요자 중심으로 가야 하는 만큼 정부가 현장을 좀더 믿고 맡겨야 한다”며 “재해구호협회 내 배분위원회에도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이 다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규정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재난지원금 등 집행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런 부분을 먼저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민간은 제도적 사각지대 등을 보완하는 역할로 각자 영역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