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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새로운 이념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 새로운 기술 도입 등이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1987년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면서 우리 사회에 플러스(+)가 됐습니다. 이번은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바꿀 기회입니다.”(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관련 정책 불확실성 등이, 안으로는 ‘최순실 게이트’로 시끄러워진 정치 상황이 경제를 둘러싼 데 대해 경제 원로들은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30일 서울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 보고회에서다. ‘코리안 미러클4’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 수장이었던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경제부총리) 등의 육성을 담은 책이다.
◇“정치·사회적 변혁 있어야 새로운 도약 이뤄져”
1997년 우리 경제가 처음으로 위기를 맞았던 때,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당시 경제팀 수장들은 현 상황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경제 원로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진 전 부총리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을 빨리 걷어내주는 것이 경제문제를 푸는 데 기본”이라고 했다.
장기적 과제로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자는 데 방점이 찍혔다. 강봉균 전 장관은 “위기를 일으킬 만한 요인을 구조적으로 바꿔서 국가 체제를 바꿔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되며 정치 민주화가 이뤄진 줄 착각했지만 권력이 집중될 뿐 아니라 책임과 권한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고 20년 전 외환위기 이후 경제구조를 튼튼히 구축했다고 자부했지만 성장잠재력이 약해졌고 정치와 관계없이 돌아가는 시장경제 질서도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
강 전 장관은 “정치적 혼란과 여기서 나오는 불확실성만 없어지면 경제활동이 차질 없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 거버넌스 체제는 경제가 정치 중립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개혁한다면 옛날의 (성장) 잠재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 수장 역할을 맡았던 이규성 전 장관은 “단순히 소비와 투자를 진작하는 경기 대응적 대책만 갖곤 안 된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이념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구조조정 등 개혁과제를 수반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일호 경제팀에 힘 실어달라”
다만 이들 원로는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바로 리더십과 팀워크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
진념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당시엔 이규성 장관을 팀장으로 모시고 팀워크가 아주 좋았다”며 “당시 대통령과 경제팀은 토론, 소통도 하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하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고 했다. 비상대책회의에서 토론하고 방향을 잡으면 대통령이 경제팀에 힘을 실어줬다고도 덧붙였다.
이들 원로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역할을 수차례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로 지명한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유일호호(號) 경제팀이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유일호 부총리는 외환위기 초기 비상계획위원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재정·예산 계획을 세세히 짜서 단기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치켜세우며 “유일호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말했다.
이규성 전 장관 역시 “대외적으로 내셔널리즘이 만연하고 국내적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있지만 중심을 잘 잡으면 우리 경제가 그래도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진 전 부총리는 “요즘 공직자들이 혼 없이 일하고 ‘최순실 예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에 가슴이 아프다”며 “정치권이 시끄럽고 흔들릴수록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공직자로 사기를 진작시키고 끝까지 최선 다한다는 결기로 어려움을 돌파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말할 때 메모하며 이를 듣던 유일호 부총리도 “국내외 정치상황에 따른 심리 위축까지 걱정되는 상황이지만 열심히 해서 저출산·고령화, 대외부문의 도전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코리안 미라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온 과거 경험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을 얻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