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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른 새벽부터 시민들은 투표장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서울시 구로구민회관 투표소에는 투표 시작 10분 전인 오전 5시 50분쯤부터 이미 투표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어머니부터 출근 전 사전투표소를 찾은 직장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이들은 들뜬 표정으로 투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투표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촌 대학가 인근의 옛 신촌동 주민센터 역시 시작 전부터 시민들이 투표장이 열리길 기다렸다. 대학 학과 점퍼를 입은 대학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서울 화곡1동 주민센터에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나온 노인부터 잠옷 차림의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신분증을 들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 줄을 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출근 복장을 한 시민들이 늘어났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에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던 시민들은 투표지를 받아들자 결연한 표정으로 기표소로 향했다. 투표를 마친 이들은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바삐 직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첫 번째 순서로 투표한 40대 이혜영씨는 “원래 늦잠 자는 스타일인데 오전 5시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일하기 전에 와야겠다 싶어서 바로 왔다”며 “우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대선 이후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는 시내 업무지역 일대의 사전투표소가 붐비기 시작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는 200명이 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금 대기하시면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안내했다. 일부 시민들은 김밥 등 간단한 식사를 사와 줄을 서서 먹기도 했다. 인근 은행에서 근무하는 김주현(26)씨는 “본 투표 당일 약속이 있어서 미리 투표를 하러 왔다”며 “세 번째 투표인데 이렇게 긴 줄은 처음 본다. 빨리 끝내고 점심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투표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사전투표소가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시간 연차 등을 통해 조기 퇴근을 하면서까지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직장인 조성원(50)씨는 “사전투표를 위해 평소보다 이른 오후 4시 30분쯤 퇴근했다”며 “당선자가 부동산 관련 정책을 안정적으로 펼쳤으면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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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를 마친 청년들 사이에선 각양각색의 인증샷이 눈길을 끌었다.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은 뒤 인증하는 고전적 방식부터 별도로 마련해 온 캐릭터 인쇄용지 등에 도장을 찍고 인증하는 방식까지 다양했다. 구로구 구민센터에서 사전투표 후 캐릭터가 인쇄된 용지에 인증샷을 찍은 박윤아(29)씨는 “투표 인증 용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이 떴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어 프린트했다”면서 “귀여운 디자인이 많아 여러 개를 인쇄해 친구들에게도 나눠줬다”며 웃음을 보였다.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전국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지기도 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관내 한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원의 뺨을 때린 A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충북 제천경찰서는 사전투표소 입구에서 “왜 지문을 찍어야 하냐. 부정선거 아니냐”고 난동을 부린 혐의를 받는 B씨를 입건했다. 서울 서대문구 옛 신촌동 주민센터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 “형수님 파이팅”, “아드님 파이팅” 등을 외친 한 보수단체의 20대 남성 박모씨가 경찰에 인계된 뒤 훈방됐다.
한편 발달장애인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 보조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는 이를 거부, 상고한 상황이다. 이번에도 투표 보조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발달장애인 7명은 이날 투표보조를 요구하며 사전투표소를 방문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박연지(33)씨는 “손이 떨려 투표보조를 받고 싶다”며 선거관리인 측에 요구했다. 이에 선거관리인은 박씨를 대상으로 기표용구시험용지에 도장을 찍을 것을 요구했고 박씨가 기표용구로 종이에 동그라미의 일부만 점처럼 찍자 “기표에 지장이 없다”며 투표보조를 거절했다.
이와 관련해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현장의 직원들이 임의로 투표보조를 위한 신체능력을 시험한 것인데 실제 투표용지와 규격이 다르지 않느냐”며 “이런 임의의 시험이 또 다른 차별기준을 낳았고, 이 일로 장애인은 또 차별을 당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상 신체상 기표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확인을 거쳐 투표보조를 할 수 있다”며 “투표관리관이 판례에 따라 이 부분을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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