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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24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한진칼 사내이사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한진칼 이사회는 “조원태 신임 대표이사 회장의 선임은 고 조양호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는 한편,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그룹 창업 정신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계승·발전시키고, 한진그룹 비전 달성이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선임은 지난 8일 별세한 조양호 회장의 장례를 치른지 일주일만의 신속한 결정이다. 행동주의펀드 KCGI 등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이 ‘조원태 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해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조원태 신임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선대 회장님들의 경영이념을 계승해 한진그룹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라며 “현장중심 경영, 소통 경영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탄탄한 기본기 쌓아
한진에 40대 총수 시대를 열며 그룹을 이끌게 된 조 신임 회장은 경영수업을 천천히 밟았다. 2003년 8월 한진그룹 IT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담당으로 입사했으며, 2004년 10월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기획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다.
2016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 총괄부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이듬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그룹의 핵심 사업에 ‘올인’했다. 2017년 6월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포함해 진에어, 한국공항, 유니컨버스, 한진정보통신 등 5개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항공 경영에 집중한 결과 작년 대한항공은 매출 12조를 돌파하며 창사 이래 최대 성과를 올렸다. 조양호 회장을 보좌해 델타항공과의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 출범, 아시아·태평양항공사협회(AAPA) 사장단회의의 성공적 개최 등을 이끄는 등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대한항공 내부적으로도 총수 공백을 무리 없이 채웠다는 평가다. 작년 말 조양호 회장이 요양 목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하자 조 신임 회장은 올해 시무식을 비롯해 50주년 창립기념일 등을 직접 챙기며 “5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가자”며 경영에 전면으로 나섰다.
또 사내 소통의 보폭을 넓히며 조직문화 개선에 앞장서는 한편, 노동조합과의 적극적 대화 노력을 토대로 발전적 노사관계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2017년 대한항공 사장 취임 직후 조종사노조, 조종사새노조, 일반노조 등 3개 노동조합을 찾아 발전적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서로 노력 하자며 대화의 물꼬를 터 조종사 노조의 파업을 철회하는 성과를 이뤘다.
사내에서는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다. 조양호 회장의 장례식 직후 출근해 제일 먼저 직원들에게 “회장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주신 임직원 여러분께 진한 감동과 깊은 감사를 느꼈다”며 “지난날의 모든 아픔은 뒤로하고 새로운 마음, 하나 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전했다.
◇상속세 해결·KCGI 경영권 위협 ‘과제 산적’
조 신임 회장이 한진그룹 회장직에 오르며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게 됐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은 많다.
특히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보유지분을 늘리는 것이 가장 주된 과제다. 조 신임 회장은 한진칼 지분을 2.34% 보유하고 있다. 또 조양호 회장이 보유한 17.84%의 지분을 상속받아야 하는데 상속세만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칼 2대 주주인 KCGI의 경영권 위협도 극복해야할 과제다. KCGI는 이날 한진칼 지분을 14.98%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꾸준한 지분 매입을 통해 한진그룹 경영권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오는 2023년 그룹 매출액을 22조3000억원, 영업이익 2조20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은 ‘비전 2023’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서 조 신임 회장은 사업 구조 재편은 물론,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사업 고도화 등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조 신임 회장은 별도 취임 행사는 갖지 않기로 했다. 그의 경영 데뷔전은 오는 6월1일부터 3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에서 이뤄진다. 별세한 조양호 회장을 대신해 대한항공 주최로 열리는 IATA 연차 총회 의장직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조원태 체제’를 공식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IATA 연차총회는 최대 규모의 항공업계 회의다. 6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120여개국 290여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와 제작사 등 1000여명 항공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항공정책을 결정하는 IATA 연차총회는 조 신임 회장이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의 위상 강화를 드러낼 절호의 기회다. 또 국제항공산업의 발전과 제반 문제 연구, 항공산업의 경제성 및 안전성 논의, 회원 항공사 간 우호 증진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올해 대한항공 창립 50주년인 동시에 IATA 가입 30주년이기도 해 더욱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