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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만들고 그림 그리던 소년들, 국내 최고 기계전문가로

박철근 기자I 2018.10.29 15:00:00

9·10월의 기능한국인에 이정원·봉원호 대표
이정원 대표, 자동차 부품 가공·자동화 설비 기술개발 주력
봉원호 대표, 최고 수준의 BLDC 모터 개발로 삼성·포드차 등에 공급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자동차 부품 가공 및 자동화 설비 생산전문 기술인인 이정원(60) SMT 대표와 자체 개발한 BLDC모터로 삼성·LG뿐만 아니라 포드자동차 등에 공급하는 봉원호(58) 봉봉전자 대표를 9·10월의 기능한국인으로 각각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중소기업의 CEO가 된 여러분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며 “여러분과 같은 숙련기술인들이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9월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이정원 SMT 대표.(사진= 고용노동부)
◇장난감 만들기 좋아하던 아이 기계 전문가 되다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던 이 대표는 ‘기술로 최고가 되면 살아남는다’는 신념으로 창원공고 기계과에 진학한 뒤 1981년 기아기공(현 현대위아)에 입사해 공작기계 조립 업무를 담당했다.

이 대표는 “기계의 근간이 되는 공작기계를 다루다 보니 기계라는 물건의 원리를 이해하게 됐다”며 “재직 중 야간에 창원기능대학을 다니면서 기계와 관련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고 이 때부터 사업에 대한 꿈을 꿨다”고 전했다.

이후 이 대표는 1992년 SMT(옛 보국기업)을 설립하고 유공압을 응용해 타이어 알루미늄 휠 부품을 제조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다. 낮에는 영업과 기계조립, 납품을 했고 밤에는 설계를 했다. 가공은 외주를 통해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혼자서도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

특히 코일스프링 제조사인 대원강업이 지금의 SMT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이 대표는 회상했다. 그는 “스프링 제조 공정 중 모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일본 기계에만 있었는데 대원강업이 비슷한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며 “국내 다른 업체에서는 어렵다고 했지만 일본 기계를 보니 단순한 구조였다. 라디오 볼륨노브를 모티브 삼아 모터 속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 납품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사세 확장에 큰 도움이 됐다”며 “기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감이 만들어 낸 결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후 인재양성과 SMT만의 아이템 개발을 위해 2009년부터 매출의 4%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자동차 현가장치용 판 스프링 홀 열간 가공기술과 집진기용 인젝터 증폭 효율 증가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후에도 사내기술연구소를 설치해 투척용 소화기, 정미기계, 분도기 등 SMT만의 상품을 만들었다.

10월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봉 대표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BLDC 모터(기존 DC모터보다 소형화 및 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모터)를 제작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10월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봉원호(오른쪽) 봉봉전자 대표가 직원과 함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 고용노동부)
◇현실 안주 대신 끊임없는 미래고민이 성공열쇠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봉 대표는 미술로 돈을 벌기는 힘들다 생각해 성남직업훈련학교로 진학했다. 교과 과정 중에 기술과목에 흥미를 느낀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반을 다루게 됐다. 이후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데 이어 최초로 시행한 기계가공기능사 1급을 취득하며 선반뿐만 아니라 밀링, 연삭 등 기초적인 기계에 대해 터득했다.

첫 직장인 동아건설 입사 면접 때 현재 공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보완할 수 있다며 연봉도 신입보다 훨씬 높은 액수를 불렀고 자격증 취득자가 귀했던 만큼 그가 원하던 조건 그대로 입사했다.

동기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지만 봉 대표는 창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창원기능대학 기계과에 진학했다. 이후 1996년 충남 천안시의 허름한 창고에서 아내와 둘이서 지금의 봉봉전자를 설립하고 전동공구에 들어가는 모터를 제조했다.

그는 “설계와 가공을 직접 처리할 수 있어서 충분히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며 “덕분에 외환위기 당시 경쟁 업체들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버텼고 경쟁 업체들이 담당하던 일까지 맡게 돼 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했다”고 전했다.

봉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래를 고민했다. 전동공구 시장 전망이 밝지 못하다고 판단해 후에는 계량기 모터를 생산했고 계량기 모터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다시 한 번 업종을 바꿨다. 바로 BLDC모터다. 이전의 소모성이 심했던 DC모터와 달리 영구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 성장성이 좋다고 판단했고 BLDC모터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2006년 자체적으로 BLDC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봉 대표는 “BLDC모터로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또 다시 공부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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