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확정 '文 복심' 김경수의 여론조작…'댓글 공작'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한광범 기자I 2021.07.21 17:29:12

대법원 "드루킹과 댓글 조작 공모…중대 범죄" 판단
드루킹 만난 후 친밀 관계 유지…댓글 125만 개 조작
객관적 증거에도 혐의 부인…김경수 "진실은 반드시 돌아온다"

김경수 전 경상남도 도지사가 21일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이 선고된 후 경남도청을 나서며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피해자였던 이 정권의 핵심 인사가 사조직으로 댓글 조작을 하다니…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1일 대법원이 김경수 전 경상남도 도지사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법조계 한 원로 인사는 이 같이 평했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공모해 지난 2016년 11월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매크로)인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이날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김 전 지사 등이 지난 2016년 12월부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전인 2018년 2월까지 14개월 동안 댓글 조작을 시행한 뉴스만 8만여 개에 달한다. 이들은 8만여 개 뉴스 속 총 125만여 개에 달하는 댓글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누르는 방식으로 우호적 댓글을 상단에 올리거나 밑으로 내렸다.

처음 댓글 활동은 선플 운동으로 시작됐다. 김 씨는 지난 2016년 9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플 운동을 제안하자 자신이 이끄는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일부 회원으로 ‘경인선(경공모 인터넷 선플 운동 조직)’을 만들어 수작업을 통해 댓글 찬성·반대 작업을 진행했다.

◇킹크랩 몰랐다? 관련 메시지도 주고받아

이 같은 선플운동은 점차 조직적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경공모 회원이던 개발자 우모 씨에게 ‘킹크랩’ 제작을 지시해 향후 보다 손쉽게 많은 양의 댓글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김 전 지사가 이 같은 경공모의 댓글 조작 활동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김 전 지사는 “경공모의 활동을 통상의 선플 운동 정도로 이해했다”며 “킹크랩 개발·운용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같은 김 전 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김 씨와 김 전 지사가 댓글 활동 관련 내용을 주고받은 흔적이 결정적이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김 전 지사와 김 씨의 만남은 지난 2016년 6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경남 양산을 지역구로 뒀던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소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이후 김 전 지사는 경기도 파주 소재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날 김 씨는 김 전 지사에게 지속적으로, 상대 정당이 댓글 기계를 사용한다며 이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전 지사 측은 법정에서 “댓글 기계 관련 브리핑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당시 김 씨가 준비한 브리핑 자료를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法 “킹크랩 시연 객관적 증명…행적 논란 의미 없어”

아울러 김 전 지사가 같은 해 11월 9일 두 번째로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킹크랩 관련 브리핑을 받았고 킹크랩 시제품 시연을 봤다는 점도 인정됐다. 법원은 “김 전 지사가 킹크랩 개발과 운용에 묵시적으로 동의 내지 승인했다”고 결론 냈다.

김 씨 측이 김 전 지사 대상 브리핑을 위해 준비한 자료에는 킹크랩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고,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도 일관된 점이 고려됐다. 특히 이미 개발이 완성돼 있던 킹크랩 테스트가 김 전 지사가 방문한 시간에 이례적으로 16분 동안 진행된 점을 이 같은 결론의 주요 근거로 판단했다.

김 전 지사 측은 항소심에서 시연 종료와 사무실을 떠난 시간 사이에 1시간 남짓의 공백이 발생하는 점을 근거로 역공에 나섰다. 하지만 법원은 이와 관련해 “시연 참관 사실이 증명된 이상 특검이 그 이후 행적까지 일일이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지지단체 중 하나?…친밀관계 여러곳서 확인

법원이 김 전 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를 인정한 또 다른 배경은 김 전 지사와 김 씨의 밀접한 관계였다. 김 전 지사는 재판 과정에서 경공모와의 관계에 대해 “지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들은 이 같은 주장과는 딴판이었다. 김 씨는 지난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1년 4개월 간 다수의 온라인 정보보고를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이나 ‘시그널’을 통해 김 전 지사에게 보냈다.

여기엔 킹크랩 현황도 포함됐다. 지난 2016년 12월 28일자 문서엔 ‘킹크랩 완성도는 현재 98%’라는 내용이, 2017년 4월 14일자 문서엔 ‘현재 킹크랩은 100대까지 충원’·‘하루 작업 기사량 300건 돌파’ 등의 내용이 각각 담겼다. 법원은 “온라인 정보보고 주요 내용은 수작업 댓글 작업과 킹크랩 관련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017년 1월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재벌 개혁 관련 기조연설문에 반영할 자료를 요청하거나 자신의 사과문 초안을 공유하기도 했다. 법원은 “두 사람이 반복적 만남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김 전 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 씨로부터 측근인 도모 변호사의 일본대사 및 오사카총영사 임명 요청을 받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문의한 후 센다이 총영사직을 역제안하기도 했다.

김 전 지사와 김 씨의 관계는 도 변호사 인사 청탁 이후 서서히 멀어졌다. 김 씨는 지난 2018년 2월 초 한 언론을 통해 댓글 조작 의혹 보도가 불거진 후 김 전 지사가 자신과의 면담을 연기하자 “1년 4개월 동안 부려먹고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뒷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법원은 “김 전 지사가 (댓글 조작을 통해) 온라인상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 전체 여론까지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 중대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대법원 선고 이후에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대법 판결 이후 경남도청을 떠나며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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