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10일 공시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시가총액이 1조7000억원으로 매각 대상인 지분 35.4%%의 가격은 6000억원 수준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KDB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축해 이번 인수전에 참여해 왔다.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두산인프라코어 자회사 두산밥캣의 지분 가치를 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한 매각 대금은 최대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번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은 재계 3·4세간 경쟁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종 승자인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직접 챙기고 있는 정 부사장이 인수 관련 업무를 진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경쟁사에서도 차세대 오너들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본입찰에 불참했지만 지난 9월까지 예비 입찰에 참여했던 GS건설은 허창수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사장이, 최종까지 본입찰 과정에서 경쟁했던 유진기업엔 유경선 회장의 장남인 유석훈 상무가 업무를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부사장은 최근 그룹내 신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1982년생인 정 부사장은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후 2009년부터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그룹에 몸을 담았다. 미국 유학 이후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해 2014년 상무, 2015년 전무를 거쳐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을 맡는 동시에 비(非)조선 부문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맡으며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간 현대오일뱅크의 아람코 투자 유치, 현대로보틱스의 KT 투자 유치 등의 성과를 냈다.
이번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까지 성공하게 되면 정 부사장의 그룹내 입지도 한층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인수절차가 마무리되면 현대중공업그룹(자회사 현대건설기계 기준)의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 점유율은 4.5%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4.6%를 점유하고 있는 볼보건설기계(글로벌 4위권)와 비등해지는 셈이다. 국내 시장 역시 70% 이상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업종의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자체 시너지를 확대하는 동시에, 그간 조선산업에 치중됐던 그룹내 사업구조도 다각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조선·정유 중심의 사업 구조가 ‘조선·정유·건설기계’라는 균형잡힌 삼각 편대로 완성된다는 의미다. 지난해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업 부문 매출 비중(그룹내 회사 별도기준 매출 단순 합산 기준)은 조선(한국조선해양+조선3사)이 32%, 정유(현대오일뱅크)가 40%로 2개 사업 부문이 70%를 웃돈다. 건설기계 부문(현대건설기계)은 4%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게 되면 건설기계 부문 매출 비중도 급격히 확대되며 그룹내 주요 사업의 한 축을 이룰 수 있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황에 따라 영업이익이 크게 좌우되는 조선, 정유 부문의 영업악화를 상쇄할 수 있는 건설 기계 부문 편입으로 새로운 성장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조선과 정유 부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목표를 116억 달러로 제시했지만 현재 목표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며 현대오일뱅크도 정제마진 악화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는 넘어야 할 숙제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로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까지 오르는만큼 독점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시장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을 유발하는 기업결합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딜리버리히어로의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인수와 관련해 잡음이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기계 시장은 가격 결정권이 소비자들에게 있어 독점 여부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고,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까지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면 정 부사장의 경영 입지는 확고해 질 것”이라며 “평소에도 그룹내 사업 다각화에 신경을 써왔던만큼 정 부사장 체제의 현대중공업그룹은 상당한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