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22일 오후 2시59분 청와대 내 접견실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녹색 재킷에 회색 바지 정장 차림의 박근혜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띤채 접견실로 들어왔다. 5자 회동차 여야 대표·원내대표를 먼저 맞기 위해서였다. 정치권은 현재 국정교과서 문제로 극한대치 중이다. 그만큼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1분 뒤인 오후 3시.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원유철 새누리당·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나란히 입장했다.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박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뵈니까 사이가 좋으신 것 같았다”면서 “실제로 그렇게 사이가 좋으시냐”고 물었다. 이에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 이름에 ‘종’ 자가 들어가지 않나. 제 이름에는 ‘유’ 자가 들어가고. 그래서 19대 국회가 이번이 마지막 회기니까 ‘유종의 미’를 거두자, 심지어 이런 구호를 만들자고까지 했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하여튼 서로 잘 통하시면 그만큼 나랏일도 잘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하자, 문 대표는 “국민들께 함께하고 웃는 모습 보이고 뭔가 이렇게 합의에 이르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선채로 그렇게 약 4분간 환담했다.
◇文, 국정화 문제제기…朴 “정치적 문제 변질 안타깝다”
‘본게임’은 그 다음부터였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테이블에 앉고, 함께 입장했던 여야 당직자들이 퇴장하면서 신경전이 본격화됐다.
첫 주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문 대표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들은 역사 국정교과서를 친일미화, 독재미화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또 획일적인 역사교육을 반대합니다.” 뒤이어 발언한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에 힘을 보탰다.
이후 이들은 토론에 가까운 국정교과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원 원내대표에 따르면 회동 전체 1시간50분 중 30분 이상은 국정교과서를 다뤘다. 원 원내대표는 “5명 모두 뜨겁게 토론했다”고 전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야당의 주장을 사실상 외면했다.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도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여야 정치권은 국회에 산적한 현안 법안들을 처리하는데 힘을 쏟자”고 제안했다. 테이블에 앉은 5명 사이에 날선 공방이 오갔다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문 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일치되는 부분은 없었다”면서 “절벽 마주한 것 같은 암담함”이라고 전했다. 지난 3월 3자 회동 이후 약 7개월 만에 1시간50분이나 머리를 맞댔지만 ‘소득’은 없었다는 것이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들이 뜻을 같이 했다”면서도 “국정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고 했다.
◇경제활성화도 이견…文 “청년일자리 창출 원론만 일치”
경제활성화도 주요 화두였다. 여권이 주장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관광진흥법 개정안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의 결단으로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아들딸들을 생각만 해도 너무 안타깝지 않느냐”고도 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은 한·중, 한·뉴질랜드,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조속한 비중을 촉구했다. “11월 중순까지는 비준동의 절차를 완료해 연내에 발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제활성화 역시 이견이 있었다. 문 대표는 “딱 하나 일치된 건 청년 일자리 창출 원론이었다”고 말했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각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날 5자회동 이후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특히 정가의 최대화두인 국정교과서 문제는 이견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논의는 일단락됐다. 이 때문에 회동에도 불구하고 추후 여의도 정가의 대치는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여야는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등을 추후 여야 원내대표·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간 ‘3+3 회동’을 통해 각론을 논의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국정교과서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