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이 촉발시킨 포항지진…정부 손해배상 법적 쟁점은

이성기 기자I 2019.03.20 17:59:47

기관별로 관련 피해규모 추정치 제각각
시민단체, 집단 손배 규모 5조에서 최대 9조 전망
고의나 과실 입증돼야, 손배 범위는 또다른 쟁점

정승일 산업부 차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연구단의 결론에 대한 산업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노희준 송승현 기자] 지난 2017년 11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은 포항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조사연구단 발표가 나옴에 따라 관련 손해배상 소송이 줄을 이를 것으로 보인다. 원인을 둘러싼 학술적 논쟁이 일단락되면서 포항 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집단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측은 이미 지난해 10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액은 지진 피해와 산업 공해 피해 부문으로 구분해 지진 피해는 주택파손 등 물적 피해(감정가)를 제외하고도 1인당 1일 위자료 5000~1만원, 산업 공해 피해는 2000~4000원이다. 올해 초 2차 소송에 1100여명이 추가로 참여했는데 포항 시민 전체로 확대될 경우 손해 배상액 규모가 5조~9조원까지 이를 것이라는 게 시민단체 측 추정이다. 포항시도 시 차원에서 대규모 소송에 대한 방향 제기와 규모, 대상 등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법적 절차가 복잡한데다 배상 규모를 놓고도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지난 2017년 12월 발표한 관련 피해액은 551억원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에서는 3000억원이 넘는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해 기관 간에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열발전소 운영사인 넥스지오는 지난해 1월 경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여서 소송에서 지더라도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피해 배상을 위해 우선 정부가 배상한 뒤 구상권(求像權)을 청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구상권 행사는 위법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와는 상관없이 법원의 손해배상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은 뒤 3년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 사업 주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가와 연구 수행기관 주체에 대해 동시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기에 법원에서 판단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만 답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가 배상 책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청구권의 발생 요건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자의 권력작용이나 관리작용이 있어야 하고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법령 위반의 위법성이 있어야 하며 △직무상 위법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고의나 과실이 입증돼야 하는 셈이다.

법무법인 현진의 박판규 변호사는 “정부 책임이 인정되는지 예단하기 어렵다”면서 “위험 신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애초에 짓지 말았어야 할 곳에 발전소 허가를 내줬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관련 시설이 장차 있을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예측 가능했었다는 것이 인정될 경우 배상 책임이 나오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의 가능성은 적고 과실이 입증돼야 한다”면서 “통상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피해를 예상할 수 없었다면 사후적으로 원인이 됐다 하더라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선 정부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손해배상 범위는 또다른 쟁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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