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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실업자, 취업자 모두 역대 최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실업자 수는 101만 2000명이었다. 사상 최초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특이한 것은 작년 취업자 수도 2623만 5000명으로 1999년 통계 기준 변경 이후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실업자만 보고 ‘실업 대란’을 걱정하긴 섣부르다. 그렇다고 취업자 증가를 마냥 반기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우리나라 고용률과 실업률은 2013년부터 4년째 나란히 상승하고 있다.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2013년 59.5%에서 2014년 60.2%, 2015년 60.3%, 지난해 60.4%로 올랐다. 실업률(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도 2013년 3.1%를 찍고 2014년 3.5%, 2015년 3.6%, 작년에는 3.7%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실업률·고용률 동반 상승의 원인으로 노동시장의 ‘공급 증가’를 꼽는다. 일자리를 찾는 인구가 늘었다는 뜻이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인력수급전망팀장 설명이다. “한국전쟁 후 태어난 인구 거대 집단인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유독 열심히 일하며 현재 노동 공급을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 산아 제한 정책 폐지(1996년) 직후 일시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출생아가 구직 시장에 진입하는 20대 초반이 되면서 고용률과 실업률이 같이 오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인구를 5세 단위로 끊어보자. 45~49세(2015년 기준 427만 명)를 정점으로 어릴수록 인구수가 줄다가 20~24세(339만 명)에서 깜짝 증가세를 보인다. 산아 제한 폐지 이후 태어난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2015년 기준 52~60세)가 주로 포진한 50대의 지난해 고용률도 74.4%로, 전체 평균(60.4%)을 14%포인트나 웃돌았다. 은퇴 시기가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에 남아서 일자리 경쟁을 한다는 의미다.
이 팀장은 “수요 측면에서 보면 매년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대체로 박스권을 형성하다가 지난해 경기 부진, 구조조정 등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한 단계 낮아진 정도”라며 “그러나 여전히 수요가 일정 규모를 유지하므로 과거 금융위기 같은 경제 위기 수준으로 일자리 여건이 나빠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이르면 5년 뒤인 2022~2023년부터는 공급 제약으로 인해 고용률과 실업률이 동반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노동력 부족 시대를 맞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보는 인력 부족, 외국인 유입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당장의 고용 한파를 녹이면서도 장기적으로 경제활동인구 대세 감소에 대비한 과감한 대책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②꽁꽁 얼어붙은 소비, 지수는 역대 최고?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5%로 낮췄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그 원인으로 ‘소비 위축’을 지목했다. 실제 소비가 위축되는지 모르겠다는 기자 질문이 나왔다. 이 총재는 “최근 소비가 당초 우려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지, 호조까지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통계가 가리키는 사실과는 좀 다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가장 최근 지표인 지난해 11월 소비지수는 121.3(계절조정 불변지수)이었다. 이는 통계 조사 이래 역대 둘째로 높은 것이다.
통계청은 국내 백화점·대형마트·슈퍼마켓·편의점 등 약 2700개 사업체의 소매 판매액을 조사해 이 지수를 구한다. 상품을 팔았다는 것은 곧 누군가 상품을 소비했다는 의미다. 통계청 소비지수는 한은과 달리 서비스 판매액을 포함하지 않지만, 지수 흐름은 대체로 비슷하다.
2010년을 기준(100)으로 구한 소비지수가 역대 둘째로 높았다는 것은 국내 소비자가 쓴 돈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작년 11월은 ‘코리아세일페스타’(9~10월) 등 정부 주도 할인 행사도 끝난 시기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그랜저 등 신차 출시 효과로 승용차 판매가 많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골목 상권 상인은 물론 한은 총재까지 “소비가 문제”라지만, 실제 소비자는 신차가 나오면 지갑에서 선뜻 수천만 원을 꺼낼 만큼 여력이 있다는 뜻일까.
사실 이런 지표는 서민의 체감 경기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통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작년 11월 소비지수는 역대 둘째로 높았지만, 전문 소매점 판매액은 9월부터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전문 소매점은 동네 상권·전통 시장 등의 과일 가게·신발 판매점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국내 소비 시장의 약 27%(11월 경상판매액 기준)를 차지한다. 전체 소비 지출액이 대폭 늘어도 소규모 자영업 상인은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고 하소연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앞으로 소비가 주춤하리라는 전망에는 정부도 대체로 동의한다. 주환욱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지난달 소비 속보치가 생각보다 괜찮은 모습이지만, 이 지표로는 최근 급증하는 모바일·온라인 판매액 등을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므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 과장은 “올해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하겠지만, 유가 반등이나 가계 소득 증가세 둔화, 가계부채 부담, 구조조정 여파 등으로 작년보다는 소비가 좋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③자영업자 매출이 급증했다고요?
‘한 집 건너 한 집은 치킨집’ 국내 영세 자영업 실태다. 이처럼 포화 상태인 자영업 매출이 최근 급증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통계청이 국내 약 450만 개 사업체를 전수 조사해 지난달 공개한 ‘2015년 경제총조사’를 보면 이는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표 자영업자 진출 업종인 숙박·음식점업 사업체 한 곳당 매출액은 2015년 기준 연 1억 6700만원으로 5년 전(1억 2200만원)보다 36.9% 늘었다. 전체 산업 매출액 증가율(6%)을 여섯 배 정도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별로는 건설 경기 호황에 힘입은 부동산·임대업(42.5%)에 이어 둘째로 매출액 증가율이 가팔랐다.
종사자 한 명당 매출액 증가율도 최상위다. 2015년 숙박·음식점업 종사자 한 명당 매출액은 연 5600만원으로 2010년(4400만원)보다 27.3% 증가했다. 전체 산업 매출 증가율(4.1%)을 크게 앞지른 것이다. 이 역시 부동산·임대업(40.4%)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이다.
이 이례적인 결과를 두고 통계청도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총조사과 관계자는 “2010년에는 사업체를 방문 조사했지만, 2015년의 경우 국세청 행정 자료 등을 적극 활용했다”며 “과거 조사 때 사업자가 매출액을 실제보다 축소해 응답하던 것이 과세 자료를 사용하면서 증가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을 과소 추계하던 관행이 개선되면서 증가율이 실제보다 높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애초 매출액 규모 자체가 다른 산업보다 작은 탓에 증가율이 높아 보이거나, 일부 대형 업체가 매출을 대폭 끌어올렸을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 여부를 짚어야 할 문제다. 통계청 관계자는 “현재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④비관론도 좋지만, ‘사실’ 근거해야
대내·외 악재로 요즘 경제가 위기라는 우울한 전망이 팽배하다. 비관론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른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이 용어는 베트남 전쟁 당시 수용소에서 8년을 지낸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일화에서 비롯했다. 그가 수용소에서 지켜보니 감옥에서 곧 나가리라고 기대하던 낙관론자가 잦은 상심에 지쳐 먼저 죽음을 맞이하더라는 것이다. 막연한 낙관보다는 현실적인 비관이 낫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비관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