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만장 푼다고? 어림없죠"…마스크 생산업체 공장 가보니

정재훈 기자I 2020.03.03 17:37:38

24시간 내내 20만장 생산…원자재·인력 부족 한계 드러내
꽉 찼던 원자재 창고 `텅텅`…"이틀 더 돌리면 재고 바닥"
국산 필터는 사실상 주문 불가…중국산은 4배로 `껑충`
사장 네 식구 총동원…2배 늘린 공장인력도 에너지 바닥
"당장 생산 늘리긴 한계…유통업체 횡포부터 관리해야"...

마스크공장 생산팀장이 텅빈 원자재 창고를 가리키고 있다.(사진=정재훈기자)


[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지난 2일 밤 10시 수도권의 한 마스크 생산공장. 철컥, 철컥, 철컥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한밤 중 조용한 시골마을의 정적을 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의식해 내부 촬영은 절대 안된다고 신신당부한 이 업체 대표인 A씨는 공장 앞마당 주차장에 자리를 잡고서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마스크 대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A사장은 “정부가 마스크 공급에 관여해 수출을 제한하고 공적 판매처에 50%를 공급하도록 한지 1주일 지났는데도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이상한 상황은 결국 생산쪽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정부는 국내 약 150개 마스크 공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하루 1000만장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 뒤 이 중 절반인 50%를 공적 판매처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지난달 25일 발표했다. 정부 계산대로라면 이미 일주일새 3500만장의 마스크가 시중에 공급돼야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민에겐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A사장은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는 걱정에 구매자들이 꼭 필요한 물량 이상으로 구매하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자재가 부족해 정부가 추산한 만큼 마스크가 생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하루 500만장 공급은 어림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평상시 15명의 직원이 하루 평균 7만~8만장의 마스크를 생산해온 이 공장도 24시간 체제를 가동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하루 20만장 가량의 마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마스크를 만드는데 필요한 원자재를 구하는 게 어려워져 언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만 해도 완성된 마스크와 원자재로 가득 차 있던 660㎡ 규모의 보관 창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아있는 30여 박스의 원자재로는 채 이틀을 버티기 힘든 형편이다.

원자재 중 마스크의 핵심인 필터 부족이 가장 큰 골치다. 현재 국내 마스크업체 70~80%는 중국산 필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 필터 수입이 원활치 않다. 이 업체에 따르면 종전에 ㎏당 5000원 안팎이던 중국산 필터 가격도 지금은 국산 필터와 비슷한 ㎏당 2만원선까지 4배나 뛰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금 대신에 완제품 마스크로 물납해야만 필터를 제공하겠다고 압박하는 필터업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당국의 매점매석 단속이 완제품 마스크에 한정돼 있다보니 비싼 국산 필터도 중간상이 사실상 싹쓸이 해 1톤을 주문해봐야 10분의1도 채 들어오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인력도 문제다. A사장의 아들과 딸, 아내까지 가족이 총동원된 것도 모자라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해 공장 생산인력을 평소 2배인 최대 30명까지 늘렸고 주52시간 근무 유예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이 인력을 24시간 가동할 수도 없고 알바생을 더 뽑으려 하니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 A사장은 “정부에선 토요일, 일요일 할 것 없이 공장을 돌리라고 하지만 현장 에너지도 이제 거의 바닥난 상태”라며 “곧 마스크 가격이 떨어질텐데 야근수당과 특근수당을 주면서 인력을 더 고용하려니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식약처 직원과 경찰 등 반갑지 않은 손님도 직원들을 불편하게 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장에 상주하고 있는 식약처 직원은 한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매점매석 단속을 이유로 경찰도 수시로 들락거린다. 이 공장 한 직원은 “계속 감시받고 있는 생각에 일하는 게 편치 않고 때론 우리가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되는 것 아닌가 싶어 기분 나쁘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스크 공적판매처 앞 줄지어 선 시민들.(사진=연합뉴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내 벌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 사태에 대해 사과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생산현장에서는 어떤 대안이 나올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A사장은 “식약처에선 필터 생산공장에도 인력을 파견해 생산을 독려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생산되는 마스크 만이라도 모든 국민들에게 골고루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선 가장 중요한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A사장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마스크 유통업체들의 사재기가 여전하다고 말한다. 늦은 밤이 되면 자신을 `동네 사람`이라 소개하며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현금을 들이민 뒤 “지역주민을 위해 나눠줘야 한다”거나 “같은 지역 기업인데 직원용 마스크가 필요하다”며 직거래를 요청하는 유통업자들이 자주 출몰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런 유통업자들은 마스크를 사려는 약국이나 소매점 등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고 있다”며 “공적 판매처 외 50% 물량 유통이라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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