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당 정책위원회 산하에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증권거래세 인하 등을 논의해왔다. 당·정·청 협의를 통해 공정한 과세체계를 확립해 국민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통보’에 가까운 기재부의 발표를 두고 의혹이 일고 있다. ‘민주당 패싱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기재부가 정치적인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를 시사했음에도 기재부는 추가 인하 가능성에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거래세 인하를 두고 당·정·청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단계적 인하’ 시사…기재부 “미확정”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언급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올해처럼 증권거래세를 인하할지 확정하지 않았다”며 “양도세 전면과세 방안을 내년에 검토하면서 이와 연계해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기재부가 청와대와도 의견조율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재부가 행사 전 배포한 자료 어디에도 단계적 인하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다. 이날 방안 발표 전 기재부는 관련 부처에 “증권거래세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세금 관련 사안은 기재부 세제실 소관이기 때문에 그 어떤 부처도 세금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기재부가 청와대에 보고하고 조율할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이날 기습 발표를 위해 철저히 사전 준비작업을 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발표 후 해당 부처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구체적인 해석과 주를 달아 국민에게 알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며 “이날 기재부의 답변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 파상 공세 예고…기재부 “변경 없다”
이번 결정과정에서 배제된 민주당은 앞으로의 파상 공세를 예고했다. 우선 방안 확정 과정을 상세히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까지 국회로 불러 의혹에 대한 소명을 듣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TF(태스크포스) 소속 한 의원은 “당정 간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기재부가 먼저 발표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4월 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시한까지 못 박았는데 이렇게 하면 당정협의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재부는 이번 기습적인 방안 발표에 대한 의혹을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당은 기재부가 언급한 ‘관련된 분’이 누군지 의아해하고 있다. 이날 기재부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당 전체는 아니었지만 관련된 분들께 전화를 하거나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미리 말했다”고 밝혔다.
TF 내에서는 증권거래세 인하에 부정적인 기재부가 인하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낸 증권거래세법안에 따르면 거래세를 매년 20%씩 인하해 5년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매년 0.06%포인트씩 5년간 인하하는 안이다. 이를 부담스러워 한 기재부가 올해 0.05%포인트를 인하한 후 내년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은 올해 상반기부터 인하하기로 한 것”이라며 “내년부터 인하하자는 최운열 의원안보다 훨씬 더 선제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거센 반발에도 증권거래세 추가 인하할지는 불투명하다. 거래세 인하는 법 개정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기재부를 압박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안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거래세 인하는 기재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기재부를 옥죌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기재부가 이번 안이 확정안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를 다 계산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