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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의 대권주자로 주목받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일만에 낙마했다. 대권의 꿈을 품고 금의환향했으나 각종 의혹과 구설수에 휘말리며 추락을 거듭하더니 결국 대권 레이스 완주에 실패했다. 귀국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무대를 꿈꾸는 청년들의 ‘롤 모델’로 추앙받았지만 논란을 요리조리 피하는 모양새를 본따 ‘기름장어’, 애매모호한 화법에 ‘반반(半半)’이란 조롱섞인 별명을 얻으며 굴욕을 맛봤다.
시작은 화려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2일 10년간 역임해 온 유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귀국했다. 귀국 직후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에 몸을 불사를 각오가 돼있다”고 선언하며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선언이었다. 수백여명의 취재진과 반 전 총장의 귀국을 눈에 담으려는 시민들이 함데 모여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만큼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초반에는 민생에 집중했다. 귀국 다음날 서울 동작 현충원을 참배한 뒤 사당3동 동사무소로 향해 전입신고를 마치고 은행에서 계좌도 개설했다.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으로 얻은 국제적 이미지를 지우고 ‘서울 시민’을 입기 위해서다. 이후 14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 천안함(15일)에도 들렀다. 17일에는 진도 팽목항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세를 확장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었다
이처럼 경상도·전라도 등을 가로지르며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지지율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오히려 잦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다보니 사소한 실수가 부각됐다. 귀국 직후 공항철도 승차권을 발매하려다 1만 원짜리 지폐 2장을 한꺼번에 기계에 집어넣거나. 선친 묘소를 참배한 뒤 퇴주잔을 원샷하는 모습, 누워있는 노인에게 죽먹이는 장면 등 사소한 실수를 거듭하며 ‘서민 코스프레’ ‘1일 1실수’ 등 겉핥기식 소통 행보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위안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기자들을 “나쁜X들”이라고 표현하며 취재진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사적인 대화’였다는 해명을 했지만 조롱섞인 비아냥만 늘었다.
실망스런 행보는 지지율로 곧장 반영됐다. 귀국 직전 30%를 넘나들던 설 연휴 직전 10% 후반으로 반토막났다. 설 연휴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10% 초반 대로 추락했다. 믿었던 보수층도 등을 돌렸다. 자신의 지지 기반인 충청권을 비롯해 대구·경북지역과 노년층 지지율도 하락했다.
조급함을 느낀 반 전 총장은 정치권 인사를 접촉하며 ‘제3지대 연대’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캠프 영입을 제안하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을 두루 접촉하며 연대를 모색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빅 텐트’로 야권 유력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넘어서자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노선을 확실히 정해달라”(손학규)는 등의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 그럼에도 반 전 총장은 전날인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에 개헌 협의체를 제안하며 안긴힘을 썼다. 그리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늘(1일)까지 새누리당·바른정당·정의당을 두루 예방하며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결국 낙마 수순을 밟았다.
반 전 총장의 행보는 ‘비(非) 정치인’ 출신의 대권 주자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 17대 대선 고건 전 총리의 행보와 닮았다. 고건 전 총리는 ‘행정의 달인’이라는 호평 속에 2006년 초부터 지지율 30%대를 기록하며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정치 기반을 찾지 못해 2007년 1월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