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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도 집행유예"…전분당 담합 일당, 8년간 10조 챙기며 법망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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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기자I 2026.04.23 11:54:10

검찰, 대상·사조CPK·CJ제일제당 등 25명 기소
전분 가격 최고 73% 올려 소비자 전가
담합 가담자 "실형 산 사람 없어"…처벌 공백 꿰뚫은 범행
나희석 부장검사 "설탕 집행유예, 항소·개인 실형 강화해야"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검찰이 지난 8년간 10조원대 전분당·부산물 가격 담합을 저질러 소비자 피해를 전가한 혐의로 대상(001680)·사조CPK·CJ제일제당(097950) 등 전분당사 3곳과 임직원 25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에서 담합 가담자들은 법정형과 솜방망이 전례를 꿰뚫고 있었고 담합은 ‘걸려도 집행유예’라는 학습된 확신 위에서 8년간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검사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백주아 기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23일 국내 전분당 및 부산물 시장을 과점하는 전분당 4사가 2017년 7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가격 담합을 벌인 사건을 수사, 전분당사 3곳과 각 회사 대표이사 등 총 25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중 1위 업체인 대상 고위 임원 1명은 지난 16일 구속 기소됐고, 나머지 24명은 이날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압수수색 착수 후 두 달 만에 담합의 전모를 밝혀냈다. △전분당 가격 일반 담합(담합 규모 약 7조2980억원) △서울우유·한국야쿠르트·농심·오비맥주·하이트진로·포스코 등 6개 대형 실수요처에 대한 입찰 담합(약 1조160억원) △부산물 가격 담합(약 1조8380억원) 등 담합 규모는 총 10조1520억원에 달한다.

수사 결과 전분당 4사는 제품별 가격 조정 시기와 폭을 사전에 합의(기본합의)하면서도 담합 사실을 은닉하기 위해 업체별로 거래처에 제안할 가격 인상·인하 폭을 달리하고 공문 발송 시기도 엇갈리게 정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매입찰을 통해 전분당을 구매하는 대형거래처에 대해서는 각 사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공동으로 결정한 가격안이 반영되도록 낙찰업체와 투찰가격을 사전에 합의했다. 부산물 가격은 대상·사조CPK·D사 3곳이 매월 공동으로 결정한 뒤 거래처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막대했다. 담합 기간 전분 가격은 담합 이전 대비 최고 73.4%(2023년 상반기 기준)까지 올랐고, 이후 원료가 하락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소폭 인하에 그쳐 담합 전 대비 50.8% 높은 수준(2025년 하반기 기준)을 유지했다.

과당류 가격도 최고 63.8% 인상됐다가 같은 기간 50.4% 높게 형성됐다. 물엿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2025년 10월 기준 39.05% 상승해,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16.61%)나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26.86%) 상승폭을 압도했다. 전분당 4사의 담합 기간 매출액은 연평균 24.5% 상승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담합 가담자들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한 가담자는 “구속되면 실형 살아야 되는 거 아니야”라며 불안감을 드러냈지만, 돌아온 답은 달랐다. “저희가 교육은 받았는데 실형 산 사람은 없고 집행유예로 다 빠졌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가구·철강 담합 사례를 언급하며 “구치소 생활은 하겠지만 실제 실형은 아니고 집행유예로 나갔다”고 서로 안심시키기도 했다.

나 부장검사는 “개인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며 “집행유예로 나가면 안 되고 실형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인들한테 큰 일인 것처럼 인식이 돼야 담합을 안 할 수 있다”고 했다.

담합 일당의 ‘학습된 대담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대놓고 비교하기도 했다. 수사에서 확보된 녹취에는 “공정위 조사는 안 불고도 넘어갈 수 있는 만만한 절차”라는 인식이 담겼다. 반면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 가면 안 볼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증거 인멸 시도도 조직적이었다. 나 부장검사에 따르면 1위 업체(대상)는 공정위 조사 단계부터 로펌의 법률 조력을 받아 “영업본부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내부 방침으로 정하고 실제 검찰 수사에서도 그 논리로 대응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파쇄기에다 핸드폰도 넣어버려야지”라는 대화가 담긴 녹취도 확보됐다. 대상 전 대표이사 휴대폰에서는 메시지 파일 2만1393개 중 462개만 남아 있었고, 복구도 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는 23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CJ제일제당 식품한국총괄과 최모 전 삼양사 대표이사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1억원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나 부장검사는 선고 결과에 대해 “법원의 1심 판단을 존중하지만 담합 범행의 규모, 범행의 악성, 유사 사건 처리 전례를 봤을 때 공감이 가지 않는 양형”이라며 “구속 기소된 사람에 대해서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것, 낮은 법정형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모두가 담합을 계속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판결문을 정확히 확인해 봐야겠지만 당연히 항소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 개인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 법인 벌금 상한도 2억원에 그친다. 나 부장검사는 “최소한 5년 이하 징역, 5억원 이하 벌금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학계 주장이 있다”고 소개하며 “과징금 상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개인 처벌 강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과징금을 과도하게 부과해 기업이 망하면 담합 가담자 수십 명 때문에 나머지 수천 명 직원이 일자리를 잃는 문제가 생긴다”며 “기업에 대한 천문학적 과징금보다 담합을 실행한 개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훨씬 실효적인 억지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수사는 지난 2월 23일 전분당 4사 및 사건관계인 압수수색으로 시작됐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검찰은 총 22명에 대해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이번 담합은 식품 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검찰은 앞서 설탕 담합(3조2715억원), 밀가루 담합(5조9913억원)도 수사해 기소한 바 있다.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9월부터 설탕·밀가루·전기료 등 생활필수품 담합에 수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공정위에 공소장 등 관련 자료를 송부해 행정제재 절차를 지원하고 공정한 경쟁질서 회복을 위해 협력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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