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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저(低)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치솟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을 댄 탓에 대입정책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자 저소득층까지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모양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교육비 총액은 19조5000억원으로 전년(2017년)보다 8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수가 573만명에서 558만명으로 15만명(2.5%) 줄었지만, 전체 사교육비 규모는 오히려 4.4% 늘었다.
◇ 1인당 사교육비 4년째 최고기록 경신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3년째 증가하고 있다. 국내 사교육비 총액은 2012년 20조원 규모가 깨진 뒤 2015년 17조8000억원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2016년 18조1000억원으로 반등한 뒤 지난해 19조5000억원으로 3년 새 1조7000억원 올랐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29만1000원으로 전년(27만2000원)대비 7%(1만9000원) 증가했다. 특히 2007년 사교육비 통계 작성 이래 2015년(24.4만), 2016년(25.6만원), 2017년(27.2만원)에 이어 4년째 기록 경신이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인당 39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이 역시 전년 38만2000원에 비해 4.6%(1만7000원)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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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별 1인당 사교육비는 초등학생 26만3000원, 중학생 31만2000원, 고등학생 32만1000원으로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작년에 비해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고등학생이 전년대비 12.8%나 됐다. 이는 중학생(7.1%)과 초등학생(3.7%)과 비교해 최대 3.5배에 달하는 증가폭이다.
고등학교에서 1인당 사교육비가 수직 상승한 원인은 대입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의 대입기조가 자주 바뀌면서 학부모 불안감을 부추기고 결국 사교육만 키웠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1인당 사교육비가 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2015~2018년 사이 정부의 대입 기조는 수시전형 확대→수능 절대평가 전환→수능 상대평가 유지→정시전형 확대 등으로 부침을 겪었다. 특히 2017년 7월 취임한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2022학년도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예고하다가 반대에 부딪히자 결정 자체를 1년 유예했다. 지금의 학년마다 다른 수능을 만든 이유다.
◇ 학년마다 다른 수능…저소득층까지 지출 늘어
올해 대입은 고교 1·2·3학년이 모두 출제범위가 다른 수능을 치른다. 고3은 기존의 2009 개정 교육과정을, 1·2학년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탓이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이에 맞춰 대입제도가 바뀌어야 하지만 대입개편 결정을 1년 미루면서 적용시점이 꼬인 것이다.
대입정책이 이처럼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만 커졌다. 이번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소득수준별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이 모든 계층에서 늘었다. 특히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지출은 9만9000원으로 전년(9만3000원)대비 5.9%나 상승했다. 이는 고소득층인 800만원 이상 계층의 4.5%보다 증가율이 1.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양 계층 간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5.2배에서 5.1배로 좁아진 이유를 저소득층의 지출 증가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 대입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학부모 불안감과 사교육 의존도가 커진 것”이라며 “특히 이런 현상이 저소득층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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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사교육 통계가 학부모 체감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초중고 전체 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를 29만1000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배모(44)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영어·수학 두 과목에 월 80만원이 들어간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라고 지적했다.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부터 비교적 지출이 적은 읍면지역까지 모두 포함한 통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교육 참여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39만9000원으로 전체 학생 평균(29만1000원)과는 10만 넘는 차이를 보였다.
◇ 영어 사교육비도 올라 …절대평가 전환도 무색
지역별 편차도 크다.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서울이 51만5000원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50만원을 넘었다. 이어 △중소도시 39만원 △광역시 38만8000원 △읍면지역 29만2000원으로 지역 간 20만원 넘게 차이가 났다. 그나마 서울 일반고 고등학생의 사교육비 지출이 1인당 월평균 75만7000원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일반고 학생 평균은 57만6000원이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전환한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난 점도 정부를 당혹케 하는 대목이다. 사교육 참여 학생의 과목별 사교육비는 국어 10만4000원, 영어 20만7000원, 수학 18만7000원으로 영어 사교육 지출이 가장 컸다. 전년대비 증가율은 국어 7.7%, 영어 4.2%, 수학 3.3%다. 수능 영어는 2016년에 치러진 2017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전환, 사교육비가 감소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런 예측은 빗나갔다.
절대평가는 상대평가와 달리 경쟁자의 점수와 관계없이 90점 이상이면 1등급, 80점 이상이면 2등급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등급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하위권 학생들도 등급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에 참여하면서 영어 과목의 사교육비도 상승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