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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뉴(NEW)삼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향후 삼성이 추진할 신사업과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4차 산업혁명 기술인 △시스템반도체 △인공지능(AI) △전장(전자 장비) 부품 △QD(퀀텀닷)디스플레이 △5세대 이동통신(5G) △바이오 등이 우선적인 투자 확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글로벌 M&A 시장에서 삼성이 100조원이 넘는 현금을 동원해 관련 유망 기업을 저가에 인수할 절호의 기회란 관측도 나온다.
◇113조원 현금…시스템반도체·전장 ‘M&A’ 실탄
7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말 연결 기준 현금 보유액은 총 113조 1964억원으로 전년 동기(102조 352억원) 대비 10.9% 증가했다. 현금 보유액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장기 정기예금 등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보유한 113조원에 달하는 현금이 이 부회장이 언급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되고, 신사업 분야의 M&A 등에도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며 총수 역할을 맡은 직후부터 2~3년 간 공격적인 M&A와 사업 재편에 나섰었다. 2015~2016년 인수했던 미국 모바일 결제 전문기업 ‘루프페이’, 럭셔리 가전업체 ‘데이코’, AI 플랫폼 스타트업 ‘비브랩스’, 전장 기업 ‘하만’ 등은 현재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 및 제품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M&A에 나설 것으로 꾸준히 거론돼 온 분야는 핵심 신성장 동력인 시스템반도체와 전장 부품 등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인 네덜란드 NXP반도체는 퀄컴의 인수 무산 이후 삼성전자와의 M&A 가능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 삼성전자는 NXP와 지난해 8월 자율주행에 적용될 무선통신기술 UWB(초광대역) 표준 제정을 위한 ‘FiRa 컨소시엄’을 함께 발족하는 등 협력 관계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2018년 퀄컴이 NXP 인수를 추진할 당시 제시했던 인수 가격이 삼성전자 보유 현금의 절반에 달하는 440억 달러(약 54조)에 이르는 점은 부담이다. 또 중국이 독과점 이슈와 관련해 퀄컴의 NXP 인수를 승인하지 않아 무산됐던 전례도 있어, M&A 추진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세계 3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도 M&A 대상으로 지속 거론돼 왔지만,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의 7나노미터(nm·10억분 1m) 이하 제품 양산에 집중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사업 방향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독과점 이슈 피할 주요 기업 ‘지분 투자’ 가능성도
미·중 무역 분쟁 격화로 심화되고 있는 보호 무역주의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 이동 제한 등으로 삼성의 투자 방식도 변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독과점 이슈와 맞물려 리스크가 큰 M&A보다는 삼성의 핵심 사업과 연계한 주요 글로벌 기업의 지분 매입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부회장은 EUV와 스토리지,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기업에 지분 투자해 성공을 거둔 경험을 갖고 있다. EUV 노광기(반도체 웨이퍼에 패턴을 그리는 장비)를 전 세계에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도 삼성전자가 2012년 지분 3%(현재 1.5%)를 인수해 차세대 노광기 개발에 성공한 사례다. 또 ‘특허 괴물’이라 불렸던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 램버스의 지분도 삼성전자가 2010년 9%(2016년 전량 매각)를 취득해 특허권 문제를 해소하기도 했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인 BYD도 이 부회장 주도로 삼성전자가 2016년 30억 위안(약 5166억원) 유상 증자에 참여해 투자한 기업이다. 업계에선 삼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가가 저평가 된 4차 산업 혁명 기술 보유 기업에 대한 지분 인수를 M&A에 대안으로 삼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EUV나 QD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초(超)격차’ 분야에선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한 유망 스타트업은 직접 M&A를 시도할 수 있다”면서도 “대규모 M&A보다는 협력 관계에 있는 유망 업체의 지분 매입을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방향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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