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결렬로 두 정상이 고집해 왔던 ‘톱-다운’ 방식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라는 전례 없는 이벤트를 연출하면서 기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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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식·예상 깨고 교착국면 해소…실무급서 비핵화 협상 처음부터 시작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향후 비핵화 협상의 무게 중심을 실무회담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미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이 정상간의 전격적인 ‘빅딜’ 만으로는 성사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서다.
1차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렸던 실무급의 회담이 정상회담에 앞선 사전 준비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조건을 주고 받는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가 저를 대표해 협상할 것”이라며 “우리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인 협상과 합의를 하겠다는 점에 대해 합의했다”고 말한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양측은 이번 실무회담을 통해 비핵화 협상을 위한 첫 단계부터 논의를 할 것”이라며 “접근방법부터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카드들을 다 내어놓고 맞춰보는 작업을 하게 될 거고, 포괄적으로 논의를 한다고 했으니 여러 옵션들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측은 기본적으로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전제로 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이미 북측이 영변 카드를 제시한 만큼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상수로 두고 포괄적인 로드맵을 그리기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측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타협은 포괄적으로 하고 행동은 단계적으로 해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북·미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본다”면서 “다만 단계별 행동의 첫 조치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한다면 그 대가로 어떤 조치가 따라야 하는지에 양측이 줄다리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측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측에서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완화가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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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진용 갖출 시간 필요”…정상회담 연말께 전망
전문가들은 실무협상 재개 시점에 대해서는 북한측이 ‘팀’을 꾸리고 전략을 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측은 이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총괄하고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를 수석으로 하는 실무팀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북한측에서는 외무성에서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것 외에는 실무 대표로 누가 나설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 협상 재개 시점을 2~3주 내라고 밝힌 것은 북측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요구했을 공산이 크다는 해석이다. 북한으로서는 북미 협상 과정을 잘 알고 있지만 ‘급’이 다소 맞지 않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신해 실무협상 대표로 내보낼 인사를 정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인휘 교수는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빠졌고 미국측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빠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면서 “상대방에 불편한 인사를 제거한 것은 향후 실무협상에 큰 촉진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무협상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면 연말께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며 시한을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내년도 본격적인 재선 국면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북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이 연말까지 북·미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트럼프 1기에서는 추가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