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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12·3 계엄 사태 이후 여당과 의료계와의 소통은 단절됐다. 협의체에 여당 대표로 참가한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계엄 이후)물밑에서 의료계와 논의하겠다고 한 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 당 차원에서 여야의정 협의체와 관련해서 논의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당이 협상력을 잃은 상황”이라며 “당이 안정을 되찾은 후에야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탄핵 계엄 사태로 의정갈등이 길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의사 출신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의대생 정시 모집 전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여야가 협의를 해야 한다”며 “내년에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의장은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후 이같은 우려를 전달한 적이 있다고도 밝혔다.
국민의힘이 의료계와 협상 테이블에서 나온 직후 민주당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섰다.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박형욱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용산에서 국회 야당 교육위원장인 김영호 의원과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간담회는 여당과 별다른 논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여야의정 협의체를 비롯해 한 전 대표가 띄웠던 여러 특위도 사실상 활동이 불가한 상태다. 특히 정년연장 이슈 등 이슈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격차해소특위도 활동 불가 상태에 놓이면서 앞으로 정책 주도력도 야당에 내어줄 상황에 놓였다. 격차해소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사실상 특위는 전면 중단된 상태”라며 “향후 활동 계획 등은 들은 게 없고 아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원내 특위인 노동전환특위, AI 특위 등의 적극적 활동을 당부했으나, 한 전 대표가 주도한 격차해소 특위, 수도권비전 특위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책 주도권이 여전히 거대 야당에 있는 상황에서 여당의 이 같은 접근은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은 중도층한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미래가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선을 그으면서 민생을 챙기는 전략이 필요한데, (한 전 대표가 띄운)격차해소특위 등을 무력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 의석수를 가진 야당과 정책 주도권 싸움에서 여당은 애초부터 불리한데, 일부 보수층만 가지고 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