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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는 ‘시범으로 걸리면 끝장’이라며 몸을 사리고, 기업은 기업대로 쌍벌제에 대한 우려로 외부활동을 최대한 삼가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와 언론사도 어디까지 불법이고 어디까지 합법인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법 시행으로 그동안의 과도한 접대문화가 개선되고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공무원을 비롯해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사립학교 교사, 언론사 임직원 등에 그 배우자까지 직접 적용 대상자가 400만 명에 이르고 학부모 등 간접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해당될 정도로 범위가 넓지만 핵심 내용인 부정 청탁이나 직무관련성의 기준이 모호해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더치페이’를 기본으로 허용 기준으로 제시된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관찰됐다.
실제 서울 광화문, 세종시, 대전 등 정부청사가 몰려 있는 지역과 여의도 일대,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의 고급 식당은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날부터 예약률이 급감하는 등 ‘예약절벽’ 사태를 겪었다. 롯데호텔은 김영란법 시행 전날인 27일에 비해 28일 예약율이 30% 감소했다고 밝혔다. 3만원 미만 메뉴가 있는지 확인하는 고객들의 문의 전화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 대상 행사의 경우 예정된 행사를 안 할 수는 없어 식사를 제외하든지 티 미팅으로 대체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추석 연휴 이후부터 연말까지는 가족행사와 기업체 행사, 회식이 많은 호텔 성수기다. 그럼에도 첫날부터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매출 하락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해당 지역의 고급 식당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행정과 사법·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이 밀집한 대전 서구 둔산동 일대 고급 한정식, 일식당은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전날에 비해 손님이 5분의 1로 줄은 곳도 있다.
식사에 나선 이들은 메뉴판부터 살폈다. 밥상머리 화두는 ‘김영란법’이 주를 이뤘다. 식사를 하더라도 업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식사 이후 커피 등 디저트는 건너뛰는 방식으로 만남을 최소화했다.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 3만원 이하 식사가 가능한 밥집 정보를 수소문하는 웃지못할 풍경도 생겨나고 있다. 식당 등에서 앞 다퉈 ‘영란 메뉴’를 선보인데 이어 ‘영란 앱’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영란이:본격 김영란법 사용설명서+일지작성’ 앱은 김영란법에 대한 자가체크 리스트를 제공하고 청탁 관련 면담·식사 등 관련 일지를 작성하는 기능이 있다. 금품 관련 항목은 사람 또는 기관으로 정렬해 총액을 합산해 기록할 수도 있게 했다.
반면 청사 내 구내식당, 특급호텔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 한끼 식사 가격이 7000~8000원 정도인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이 중장기적으로는 사회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수요 위축과 이에 따른 고용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농·수·축산인들은 법 시행 이전인 지난 추석 명절 이미 매출감소를 체감했다. 한우는 전년 추석 대비 매출이 19.1% 감소했고, 인삼은 0.5% 매출이 줄었다. 서울 정부청사 인근 유명 한식집 ‘유정’과 ‘해인’ 등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문을 닫았다. 손님이 줄어들 것을 고려해 종업원 수를 줄인 식당도 상당수다.
경기 위축에 따른 어려움은 대기업 보다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업계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문성섭 한국화훼협회장은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매출이 이달 들어 전년 대비 30%나 급감했다”며 “종국에는 한국의 화훼산업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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