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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무효" 故 지학순 주교 재심, 46년 만에 긴급조치 위반 무죄

남궁민관 기자I 2020.09.17 17:21:36

1974년 양심선언 이후 징역 15년 선고 받아
재심 法 "긴급조치 당초 무효…헌재 위헌 결정도"
다만 내란선동 및 특수공무방해는 "실체 판단 불가"
양형만 다시 정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헌법은 무효”라고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겪은 고(故) 지학순 주교가 4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해대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이데일리DB)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허선아)는 17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및 내란선동, 특수공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지 주교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1, 2, 4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현행 헌법에 비춰 위헌무효”라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효력이 상실하거나 법원에서 위헌·위법 무효가 선언된 경우 공소제기된 사건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긴급조치 1, 2, 4호가 당초부터 무효라고 할 것이어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불고지에 따른 긴급조치 위반은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함께 공소제기된 내란 선동과 특수공무방해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다시 실체를 판단할 수 없다”며 “유죄를 뒤집을 수 없으나 지 주교의 행동으로 국가 안녕질서 유지에 큰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공무원 폭행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 당시 민주화 상황 등을 고려해 양형만 다시 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지 주교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 주교는 1974년 7월 김지하 시인에게 돈을 줘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해당 돈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명(민청학련)’ 자금으로 쓰였다며 지 주교를 민청학련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 등의 노력으로 석방된 지 주교는 이후 수녀원에 연금됐다가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했다. 다만 비상군법회의에서 출두명령을 내리자 명동가톨릭회관 앞 마당에서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발표했다.

결국 지 주교는 재차 중앙정보부에 연행, 이어진 재판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때 지 주교 석방을 요구하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기도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 가톨릭계 전반적으로 지 주교 석방 요구가 거세지자 박 정권은 이듬해 2월 지 주교를 석방했다.

지 주교는 1993년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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