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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인수 원점 재검토" …고민에 빠진 채권단

이승현 기자I 2020.06.09 20:00:00

'이달 말까지 결정' 독촉에 '조건 원점 재검토' 대응
2.5조 인수가격 인하 요구 '유력'…채권단 부정적 입장
계약결렬 염두에 둔 사전절차 분석도 제기

[이데일리 이승현 김미영 기자] 이달 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를 결정하라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에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조건 원점 재검토’ 카드로 받아쳤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부담을 지금보다 완화해줘야 인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제 공은 다시 채권단으로 넘어왔다.
[사진제공=아시아나 항공]
채권단에 공 넘김 HDC현산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이날 HDC현산이 공식적으로 요구사항을 발표하자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채권단은 이날 장시간 논의를 벌였지만,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다. 채권단 내부적으론 결국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HDC현산은 이날 채권단에 인수조건 재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HDC현산은 먼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수상황 재점검 및 인수조건 재협의 등 산업은행 및 계약 당사자 간 진정성 있는 노력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성공적으로 종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격협상 등 인수조건을 다시 논의 하자는 것이다.

HDC현산은 그동안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아시아나항공 인수작업 무기한 지연과 계약 포기설에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날 최종 공식입장을 공개했다. 채권단이 지난달 29일 HDC현산에 보낸 독촉 성격의 공문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채권단은 HDC현산에 ‘6월 27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있는지 밝혀야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6월 27일은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인수계약을 마무리하기로 한 시점이다. HDC현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인수하고 2조1772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채권단으로선 HDC현산에 인수 혹은 포기 등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했고, HDC현산은 인수조건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채권단에 다시 공을 넘겼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인수가치 훼손됐다” 인수가격 낮추기가 관건?

HDC현산은 채권단에 구체적인 재협상 조건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조건 원점 재검토를 언급한 만큼 핵심은 인수가격 인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HDC현산은 입장문에서 “인수계약 체결 후 예상할 수 없었던, 인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인수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여러 상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인수계약 체결 이후 5개월 만에 아시아나항공 부채규모가 4조5000억원 늘어난 것을 문제 삼았다. 계약체결 후 추가로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인식됐고 여기에 지난 4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조7000억원을 더 빌려줘 부채규모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HDC현산은 특히 채권단의 1조7000억원 자금 투입에 ‘부동의’ 의견을 밝혔는데도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사전 동의 없이 승인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아시아나항공 기업가치는 크게 감소한 상태다. 인수계약에서 구주와 신주 인수가격을 1주당 각각 4700원과 5000원으로 산정했는데, 이날 주가는 4440원이다. HDC현산이 구주 또는 신주 인수가격 인하를 통해 전체 금액을 깎으려 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관건은 채권단이 HDC현산의 요구를 받아들일 지 여부다. 채권단은 재협상에는 응하겠지만 공식입찰 절차에서 확정된 금액을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주 인수가격을 낮출 경우 매각대금이 줄어드는 금호산업의 반발도 예상된다.

영구채 출자전환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영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형태다.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에 1조6000억원을 지원하며 영구채 5000억원을 인수했다. 출자전환하면 채권단은 지분을 30%가량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HDC현산으로선 사실상 정부가 아시아나의 주요 주주로 참여하게 되는 부담이 생긴다.

양측이 거래 종료시점을 이달 27일에서 6개월 후로 미루는 방안에는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은 많지만,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수가격 인하 등을 두고 양측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재협의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단의 내용증명 발송과 HDC현산의 인수조건 원점 재검토 요구 모두 계약 결렬까지 염두에 둔 조치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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