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한 도급업체 직원이 에너지부 규정 ‘10 C.F.R. 810’에 따른 수출 통제 정보인 원자로 설계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되어 해고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 해당 연구원이 국내 모 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박사 출신 A씨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동 연구한 ‘사고저항성핵연료(ATF)’ 프로젝트에 관여했다고 보도했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은 “INL과 사고저항성핵연료(ATF) 관련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 없다”며 “내부 조사 결과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항은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韓 원자력 기술 뛰어나 유출 이유 없어
원자력 학계 전문가들도 한미 연구기관 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기술을 유출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산업 스파이를 할 이유는 없다”며 “기술 유출과 관련된 가능성은 낮고, 단순한 보안 규정 위반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원자력 연구 분야에서 설계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산업 스파이 활동은 없다고 강조했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미국 정부가 한미 원자력 협력에 문제가 없다고 공식 발표한 만큼 이번 사건이 연구 협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며 “한국 연구기관이 미국의 원자력 소프트웨어를 훔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서방 국가 중에서 기술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 프랑스, 한국뿐”이라며 “미국과의 협력 관계가 유지되는 한 과도한 확대 해석은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중대 보안 사고 보기 어려워” 경고 차원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중대한 보안 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교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면 미국은 즉시 한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한국 정부와 연결 짓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전 한국원자력학회장)는 “한미 공동연구에서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지는데, 민감한 정보를 고의로 빼내려는 정황이 있었다면 1년 전 사건을 지금까지 묻어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자력 설계 관련 소프트웨어가 수백 가지에 달하지만, 핵심적인 중요 소프트웨어는 아닌 것 같고, 경고 차원에서 민감국가로 지정해 관리하려는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 철회 노력 “과학기술 협력 지장 없어야”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국내 연구자들은 DOE(미국 에너지부) 관련 시설이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관련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더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DOE의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돼 있었으나, 1993년 제1차 한미 과기공동위원회에서 한국 측의 시정 요구와 국내외 정세 변화를 계기로 1994년 7월 해제됐다.
과학계에 따르면 민감국가로 분류됐을 당시 ‘45일 전 통보 조항’이 도입됐고, 1994년 해제 이후에도 이 조항은 유지돼 실제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추가 규제가 이뤄질 수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 문제가 한미간 첨단기술 공동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한 입장이다.
과기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 공동 개발을 하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 아르곤 국립연구소,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와 이차전지, 재생에너지, 계산과학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로런스 버클리 연구소와 바이오 파운드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한미 과학기술 협력에 있어 미래에 지장이 없도록 앞선 추측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번 조치가 다소 불합리한 측면이 있으니 정부 차원에서 철회를 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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