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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루게릭병 진단…우주론·양자이론·중력연구 기여
로이터 등 외신은 호킹 박사가 현지시간으로 14일 오전 영국 캠브리지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아버지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1942년생인 호킹 박사는 1959년 17세의 나이로 옥스퍼드대에 입학했지만, 21세에 전신근육이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들은 그가 2~3년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 했지만, 호킹 박사는 예상보다 반세기를 더 살았다.
호킹 박사는 우주론과 양자이론, 중력이론 연구에 기여하며 세계적 물리학자 반열에 올랐다. 몸이 뒤틀리는 역경 속에서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 재생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singularity·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밀도가 무한대인 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다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부분적으로 결합해 블랙홀의 특성을 파악할 경우에는 블랙홀이 빛을 포함한 모든 물체를 삼켜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이론을 내놨다.
그는 1976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는 이론을 통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정보는 다시 방출되지 않으며 블랙홀이 에너지를 소멸하면 함께 사라진다고 주장했지만 2004년 “빨려 들어간 정보가 방출될 수도 있다”고 스스로 뒤집기도 했다.
이 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호킹 박사는 1975년에 캠브리지대 응용수학 및 물리학과의 교수에 임명됐고, 1979년에는 루카시안 수학 석좌교수에 올랐다. 루카시안 석좌교수는 아이작 뉴턴, 폴 디랙 등이 거쳐 간 최고의 영예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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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박사가 ‘스타 과학자’로 발돋움 한 것은 1988년 발간한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를 통해서다. 그는 책을 통해 빅뱅 이론, 블랙홀, 우주의 미래와 종말을 전망했다. 세계적으로 1000만권 이상이 팔렸다.
그는 평생 어려운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BBC 뉴스는 호킹 박사에 대해 “유머 감각이 뛰어난 호킹 박사는 뛰어난 과학 홍보대사였다”며 “그는 언제나 대중이 자신의 작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65년 대학 시절에 만난 부인 제인 와일드와 25년간 결혼생활을 하다 1995년 이혼하고 자신을 돌봤던 간호사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으나 2006년 다시 이혼했다. 호킹 박사는 메이슨이 자신을 구타했다는 소문에 대해 부인했다.
호킹 박사는 1990년과 2000년 두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1990년에는 서울대 등에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과 아기우주’라는 주제로 강연했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한 2000년에는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주제로 청와대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