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싸움에…中 IT공룡들, 美나스닥 대신 중국증시로 발돌린다

신정은 기자I 2020.07.21 17:30:07

알리바바 앤트그룹, 상하이·홍콩증시 동시 상장
시장가치 2000억달러 전망…페이팔과 맞먹어
블룸버그 "커촹반 승리…홍콩거래소 부흥에 도움"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미국 나스닥 상장 붐이 일었던 중국 IT 공룡들이 중국 본토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한편 중국 거래소는 상장 문턱을 낮추는 등 유인책을 동원하고 있어 효과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21일 중국 베이징일보 등에 따르면 전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의 금융부문 자회사인 ‘앤트 그룹’(Ant Group)은 중국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상하이에서는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에 상장할 예정이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앤트 그룹은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이 세운 기업 중 하나로, 중국 최대 모바일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결제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빅데이터와 사용자를 바탕으로 펀드, 대출, 보험,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운영하는 핀테크 산업의 선두주자다.

앤트 그룹은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할 구체적인 자금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시장가치가 2000억달러(한화 약 24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중국 국영은행인 중국건설은행 기업가치를 뛰어넘는 것으로, 미국 핀테크 기업인 페이팔의 기업가치 2040억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앤트 그룹이 올해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기업공개(IPO) 중 가장 큰 규모를 달성하는 곳 중 하나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앤트 그룹처럼 최근 중국 대기업이나 첨단기술 기업이 미국 나스닥이 아닌 중국 자본시장에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홍콩과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활기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나스닥 상장사인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로, 지난해 11월 홍콩증시에 2차 상장했다. 홍콩거래소가 지난 2018년 3월 대주주가 경영권을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기업들을 유인했다는 분석이다.

이어 경쟁사인 징둥(京東), 게임회사 넷이즈 등도 올해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와 대표 여행사 씨트립 등도 홍콩 증시 2차 상장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정부가 기술혁신 기업을 위해 상하이증권거래소에 만든 커촹반에 상장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중국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中芯)국제집적회로(SMIC)는 커촹반 개장 이후 역대 최대 IPO 규모인 총 532억3000위안(약 9조1500억원)을 조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세계 IPO 규모는 939억달러(약 113조원)로, 전체의 49%를 아시아 기업들이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 격화는 중국 기업들의 본토 상장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루이싱 커피가 회계부정으로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된 이후 미국에선 중국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조짐이다. 미 상원은 지난 5월 중국을 겨냥해 미국의 규제 및 감사기준을 지키지 않는 외국기업 상장을 폐지하는 ‘외국기업설명책임법’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과 중국이 지난 2013년 체결한 회계당국간 합의를 곧 파기할 계획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미국 정부가 중국 공산당원과 가족들의 미국 방문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일각의 보도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비롯해 해외에 알려져있는 중국 부호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산당원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앤트 그룹의 결정은 중국 정부가 상하이거래소를 고(高)성장 기업의 우선 상장 거래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설립한 ‘커촹반’의 승리”라며 “또한 뉴욕 거래소에 중국 기술 기업을 뺏긴 후 상장 규제를 완화한 홍콩거래소의 부흥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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