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업계 전문가들은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인수를 강요하면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인수 후보자들의 인수 유인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개입찰에 두곳 출사표…인수능력 의문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마감된 홈플러스 공개입찰에는 인공지능(AI) 벤처기업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임대·개발업체 스노마드가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두 회사는 매각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과 비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하고 오는 21일까지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실사를 마친 뒤 오는 26일 본입찰 참여 여부를 확정 짓는다.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을 당초 11월10일에서 12월29일로 연장했다. 이 기간 안에 인수계약이 체결되면, 해당 내용을 포함한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인수 의사를 밝힌 두 기업은 사실상 적격 후보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기업 모두 거대 유통 기업인 홈플러스를 인수하기에는 영세한데다 경영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하렉스인포텍은 지난 2000년 설립된 핀테크 기업으로 모바일 결제서비스 ‘유비페이’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 3억원, 영업손실 33억원을 기록했다. 인수자금을 해외 투자사로부터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노마드는 2007년 명선개발에서 물적분할돼 설립된 부동산 개발·임대업체다. 지난해 매출 116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73억원, 자산총계는 1597억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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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의향자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권은 대안으로 농협 인수론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치권이 아무리 압박을 해도 현실성은 낮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가 수년간 쌓여 부실해진 탓이다. 인수 부담이 커 농협 뿐만 아니라 어느 후보도 쉽게 나서기 어렵다는 평가다.
농협 자체의 유통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농협경제지주는 자회사인 하나로유통과 농협유통을 통해 하나로마트를 운영하지만, 지난 2022년 이후 매년 수백억원대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유통과 하나로유통이 연간 400억원씩, 총 800억원 적자가 나고 직원 200명 이상을 구조조정했다”며 홈플러스 인수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농협이 정치권 압박에 떠밀려 홈플러스를 떠안을 경우 조합원 자금의 목적 외 사용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협의 존재 이유는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 경쟁력 증진을 위한 금융·경제사업 수행’이다. 조합원인 농민의 경제적 기반을 위해 쓰여야 할 자금이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향후 유통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반복될 때마다 농협 등 협동조합 자금이 ‘사회적 완충장치’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로 인한 고용 불안이 커질수록, 정부와 정치권이 직접 구제 대신 협동조합 자본을 활용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통업 구조적 문제…새 주인 찾아도 막막
시장에서는 문제의 본질이 홈플러스가 맞닥뜨린 유통 산업의 구조 전환 실패라고 지적한다. 대형마트 중심의 사업모델이 이미 성장 한계에 봉착했고, 온라인 전환 속도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단순히 새 주인을 찾는다고 해법이 마련되는 구조가 아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지금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특정 인수자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할만한 메리트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홈플러스에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서 인수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정부에서 인수자를 압박하기보다, 시장이 ‘이 정도면 인수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방향으로 유인을 설계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청산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한 M&A 업계 전문가는 “정치권이야 일단 유통업이 있다는 이유로 ‘일단 사가서 해결해봐라’ 식으로 강요하겠지만, 농협의 하나로마트를 중심으로한 농산물 유통과 홈플러스의 대형마트형 소비재 중심 유통은 사업 목적과 소비자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며 “시너지보다 혼란이 크고, 기존 유통망도 수익성이 낮은 상황에서 홈플러스까지 떠안으면 전체 유통사업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농협까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도 혈세 투입 논란이 있어 직접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그러나 시장에 충분한 시그널은 줄 수 있다. 최소한도에서 재정지출을 활용하고, 돈쓰기보다는 규제를 적극 푸는 방식으로 유인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인수 후보자들에게 꺼낼만한 ‘당근’으로는 대형마트 건물의 용도변경이 어려운 점을 감안한 ‘제한적 부동산 규제 완화’,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보험기금을 통한 인건비 지원, 세제 유예 등 비재정적 지원책 등을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