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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찬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지난달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10명 의해 발의되자 또 다시 찬반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찬성 측과 반대 측의 각종 집회 및 시위가 진행되면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44개 여성단체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차별 구조가 바뀌기 위한 단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며 “국회는 성 평등을 앞당기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또 다른 여성단체인 바른인권여성연합은 같은 날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여성성의 가치를 폄하, 파괴하고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금지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트랜스젠더·게이 등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여성을 역차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계도 반대 중이다. 종교계 등 498개 시민단체가 모인 연합단체 역시 같은 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을 발족하고 본격 활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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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병력·나이·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고용·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법률이다. 지난 2007년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후 20대 국회까지 총 6차례 발의됐다가 논쟁의 불씨만 당기고 사라졌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의된 법안은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공약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고 법무부는 2007년 12월 법안을 발의했다. 이때부터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보수단체와 종교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는 2008년 5월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민주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꾸준히 의원 입법안을 제출했다. 2013년 2월에는 최원식 전 민주통합당 의원과 김한길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으나 철회됐다. 당시 보수세력과 종교단체의 거센 공세로 두 달 뒤인 4월 19일 철회 의사를 밝힌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최·김 의원은 당시 “발의 이후 기독교 일부 교단을 중심으로 한 법 제정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됐고, 항의 전화와 낙선 서명운동 등을 내세운 압박도 계속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두 의원은 각계 각층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해 다시 발의하기로 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이 매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차별금지법에 대한 왜곡된 이해라고 꼽았다. 실제로 종교 커뮤니티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한다’,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이라는 글들이 오갔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동성애 법’, ‘동성애 반대 처벌법’ 같은 대한 왜곡된 시선 때문에 그동안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허무맹랑한 ‘가짜뉴스’가 법의 본질을 흐리고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하게 한다”며 “불합리한 차별을 지양한다는 법 자체의 정신에 맞춰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논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