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서 트럼프 제친 바이든…증세공약에 떠는 월가

이준기 기자I 2020.06.09 18:54:33

'지지율 고공행진' 바이든, 트럼프와 두자릿수 격차
법인세 최고세율 28%…사실상 트럼프發 '감세 지우기'
골드만 "S&P 주당 수익, 12% 감소"…투자이익 저하
내년 초 이르다…'리더십 교체' 위한 작은 대가 관측도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미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건 조 바이든발(發) 법인세율 인상 가능성이다.”

오는 11월3일 미국 대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사진) 전 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14%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8일(현지시간) 나왔다. 최근 50%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격차를 처음으로 두자릿수 이상으로 벌린 것이다. 미 대선을 주시하는 월가(街)가 다시 ‘증세’를 앞세운 바이든 전 부통령의 경제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다. 바이든식 증세는 질주하는 미 뉴욕증시에 가장 큰 악재가 될 수 있는 사안으로 평가받는다.

◇지지율 고공행진에 바이든 ‘증세 공약’ 재부각

8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이 공개한 여론조사(2∼5일·성인 1259명·표본오차 ±3.4%포인트)에 따르면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바이든을 지목한 응답자는 55%에 달했다. 반면, 트럼프를 고른 응답자는 41%에 그쳤다. 불과 한 달 전 같은 조사에서 바이든 51%·트럼프 46%가 나온 것에 비춰보면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CNN은 미국에서 1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 사태와 백인 경찰의 강압행위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반(反) 인종차별 시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강한 우위를 점하는 형국이다. 전날(7일) NBC방송·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49%의 지지율을 기록, 트럼프를 7%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ABC방송·워싱턴포스트(WP), 미 몬머스대, NPR·PBS방송 등 최근 일주일 새 나온 3차례의 여론조사 바이든 전 부통령은 50% 이상 지지율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다. 지지율 50%는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한 번도 넘지 못한 ‘장벽’이다. 바이든이 대권에 성큼 다가선 것 아니냐는 섣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월가 역시 바이든 전 부통령의 ‘경제 공약’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이날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내년 초 증세 및 이에 따른 투자이익 저하 가능성을 짚은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2018년 초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등의 과감한 감세로 증시 호황을 이끌었다. 그러나 바이든 전 부통령은 경기부양을 위해 3조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은 탓에 국가재정이 악화한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한 만큼 증세를 통해 나라 곳간을 채우고 소득재분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증세’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를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은 28%로 끌어올리는 게 골자다. 여기에 특정 외국인 소득에 대해 무형자산발생소득(GTI) 세율을 2배로 올리고, 최저 세율 15%를 부과할 계획이다. 고소득자에 대해선 추가 급여세를 부과할 공산이 크다. 여기에 양도소득세와 고소득자 배당 등에 적용되는 세율 인상 등 개인 세법 개정도 이뤄질 수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 측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 같은 증세안을 내년 초 밀어붙일 계획이다.

사진=AFP
◇증시에 직격탄…“내년 초, 너무 이르다” 관측도

문제는 이 경우 미 증시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 3월23일 저점을 찍고 반등해 이미 올해 손실분을 모두 만회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19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거의 근접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전략가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바이든발 증세가 시작되면 내년 S&P 500지수의 수익은 주당 170달러에서 주당 150달러로 12%가량 감소할 것으로 봤다. 그는 “기업 이익과 주식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윌슨 미 주식전략가도 “S&P 500지수의 100~150포인트 하락이 감세 롤백(rollback)의 영향에 대한 기준선”이라고 했다. iQ캐피털의 키스 블리스 경영파트너도 야후파이낸스에 “바이든의 ‘증세’와 트럼프의 ‘제조업 르네상스’가 어떻게 공존할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증세가 현실화하더라도 내년 초는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발 충격의 회복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다. 투자기업 AGF인베스트먼트의 그렉 발레리에 미 정책전략가는 폭스 비즈니스에 “내년 초 큰 폭의 세금 인상에 대해선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2021년 초가 세금 인상에 좋은 시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증세와 이로 인한 증시 조정은 백악관의 리더십 교체를 위해 지불해야 할 작은 대가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그룹 웰스파트너스의 위니 선 매니징파트너는 “높은 세금은 우리가 확실하게 우려하는 것 중 하나”라면서도 “그러나 사람들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투자자들은 자녀를 위해, 손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다음 세대를 위해 (미국의 정권교체를 통해) 더 나은 평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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