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울진·동해 산불 피해 현장 찾았더니
전쟁터마냥 검게 그을린 화재 흔적만 남아
울진 상황 더 심각해…숨조차 쉬기 어려워
순식간에 닥친 불 변기물까지 동원 안간힘
"평생 터전 무너졌다"…망연자실에 눈물만
[울진·삼척·동해=이데일리 이용성 김형환 기자] 7일 강원도 동해시에 들어서자 메케한 냄새가 가장 먼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잿빛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동해시의 하늘이 화마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동해에 들어서기 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는 극명히 대비됐다. 유리창 밖으로 산불 재가 여전히 쌓여 있고 다 타버려 검게 변해버린 곳은 주택이 있던 자리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산불로 타버린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 한 주택의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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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폭탄 맞은 듯…“100년 넘은 집 삽시간 잿더미”
“지난 5일 새벽에 큰불이 났다는 소식에 아들 집으로 피했는데 그날 오후 2시에 집이 불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집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직접 나무로 지은 집으로 100년이 넘었다. 결혼사진도 못 챙겼다.”
동해시에 사는 전 모 씨(73)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전 씨는 “집이 직접 타는 모습을 봤다면 기절했을 것 같다”며 “아들이 그래도 심지가 강한데 집이 타는 걸 보고 온몸을 떨었다”고 했다.
지난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60대 남성이 토치로 일으킨 방화는 강풍을 타고 4시간 만에 동해시까지 퍼지며 산림과 주택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7일 오전 11시 기준 파악한 동해시의 산불피해면적은 2100㏊로 축구장 2941개 면적에 이른다. 묵호등대와 논골담길로 유명한 묵호동 곳곳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었다.
| 산불로 존소한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 한 주택의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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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61) 씨는 “지붕이나 불이 붙을 만한 곳에 물을 뿌리라는 이야기가 있어 물을 뿌리려 했지만 바람이 너무 강해 못 뿌렸다”며 “갑자기 불이 확 들어왔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어머니·아버지 영정 사진만 챙겨 나왔다. 내가 살아온 61년이 모두 부정 당하는 기분이다. 누우면 잠이 안 오고 눈을 감으면 눈물만 난다”고 하소연했다.
허 모(74) 씨도 “동해로 불이 넘어온다고 해서 정신없이 대피소로 이동했다”며 “불을 끄려고 들어가려 했는데 주변에서 말려서…평생 삶의 터전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정말…. 불이 삽시간에 퍼지니 뭐 챙길 시간도 없었다. 전자제품, 귀금속 싹 다 탔다. 연기가 자욱해 시야는 물론 숨쉬기도 어려웠다”고 울먹였다.
동해시 주민은 현재 망상컨벤션센터, 국민체육센터,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 등 임시대피소로 대피한 상태다.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는 23가구 45명이 대피해 있다. 이들은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운 후 다시 찾은 집터가 폐허로 변한 모습에 큰일 날 뻔했다고 혀를 차거나 전소한 곳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뒷짐을 지고 하염없이 불에 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산불로 타버린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 한 주택의 모습. 에어컨 실외기가 타버렸고 타다 남은 탁자 등 가재도구가 보인다.(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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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은 지금도 화마와 사투 중”
경북 울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나흘째 산불이 계속되면서 자욱한 연기와 떠다니는 재로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하늘은 헬기 소리로 요란했다. 소방헬기는 끊임없이 저수지와 인공으로 만든 담수지에서 물을 퍼 올려 산에 뿌렸다. 주택가에는 집 앞까지 내려온 불씨를 잡기 위해 대기 중인 소방차와 비상용 펌프 차량, 통신업체 차량 등이 뒤섞였다. 취재진이 길에서 마주친 마을 주민들은 쓰러진 집들을 바라보며 “세상에 우짜노”와 같은 말들만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 연기로 가득한 울진(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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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 사계1길에 사는 전성준(87) 씨는 “평생 농사 외는 해본 일이 없는데 이번 산불로 집은 물론이고 논밭, 경운기 트랙터가 모두 불타버렸다”며 “8살에 이사와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 무너졌다. 급하게 대피하라는 이야기 때문에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못했다. 4년 전 아내와 사별했는데 아내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집 이야기도 듣기 싫고 꼴도 보기가 싫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온양1리에 사는 홍중표(63) 씨는 “당시 산 위쪽에서 연기가 보이더니 조금 지나자 산등성이가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다가왔다”며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아온 집이 불에 탔다. 논과 밭도 불에 타버렸다. 트랙터는 고장 나서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63년 평생을 살아온 공간인데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12년 전에 울진으로 귀농했다는 박 모(68) 씨는 “불이나 집, 농기계 창고, 경운기 등 모두가 불에 타버렸다. 농기계만 한 1000만원 정도인데 챙기러 갔다가 집안을 덮친 불을 보고 머리가 새하얘져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며 “산불이 귀농의 꿈을 모두 빼앗았다. 너무 속상해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 울진국민체육센터 이재민 대피소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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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을 피해 울진국민체육센터로 대피한 이재민들은 담요를 덮고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개인용 텐트 100여개(3∼5인용)가 설치된 이재민 대피소에는 현재 500여명이 머물고 있다. 산불피해가 컸던 소곡리에서 대피해온 최 모 씨는 “10분만 대피가 늦었어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며 “그만큼 강한 불이 이곳저곳 날아다녔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양수기로 물을 끌어 올려 불을 끄려 했지만 전기가 끊겨 결국 화장실에 있는 변기 물까지 동원해 물을 뿌렸으나 집에 불이 옮겨붙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