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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는 옛말…금융권 CEO 인사판 흔드는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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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기자I 2026.09.14 18: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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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금융 계열사 CEO 54명 올해 말 임기만료
이사회 독립성 쟁점…KB금융도 수장 바뀌어
연임 관행 대신 실적·미래전략 등 평가될 전망

[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금융지주 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에서 사외이사(독립이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현직자 연임에 별다른 이견 없이 동의하는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독립적 판단을 하라는 요구가 거세지면서다. KB금융(105560)지주가 현직 회장이 아닌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한 가운데 연말 줄줄이 예정된 금융권 CEO 인사에서도 이사회의 독립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5대 금융 계열사 CEO는 KB금융 10명, 신한금융 12명, 하나금융 13명, 우리금융 12명, 농협금융 7명 등 총 54명에 달한다. 이중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월31일 일제히 만료된다.

내년 2월에는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도 첫 임기를 마친다. 농협금융은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하는 만큼 연말부터 차기 회장 인선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금융지주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는 최근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그동안 금융지주에서는 현직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가 다시 회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장기 연임 자체보다 CEO와 이사회 사이의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이를 둘러싼 압박도 한층 강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과 폐쇄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부패한 이너서클’(폐쇄적 권력집단)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이사회 독립성과 CEO 선임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높이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상법도 이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사내이사와 집행임원 등으로부터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사라는 점을 명문화했다. 단순히 회사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앉히는 것을 넘어 경영진과 독립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역할을 법률에 명시한 것이다.

이재근 후보자가 KB금융 차기 회장으로 결정된 것은 이사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드러난 상징적 사례다. 이번 결정 과정에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위원들은 특정 후보를 두고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결정에는 사외이사들이 특정 후보나 현직 회장에게 편향되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판단하려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KB금융만의 현상이라기보다 금융당국과 시장이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연말 예정된 금융사 CEO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5대 은행장을 포함해 주요 금융지주 계열사 CEO들의 임기가 잇따라 만료된다. 이사회가 현직의 연임을 관행적으로 추인하기보다 실적과 미래 성장전략, 조직을 이끌 역량 등을 보다 엄격하게 평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KB금융에서는 이홍구 KB증권·구본욱 KB손해보험·김영성 KB자산운용·빈중일 KB캐피탈·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가 3년 차 임기를 마쳐 교체 가능성이 있다. 신한금융 주요 계열사 중에는 박창훈 신한카드 사장, 우리금융에서는 은행 출신 계열사 대표 일부가 변경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 계열사에서는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 성영수 하나카드 대표 등 주요 계열사 CEO가 대거 인사 테이블에 오른다. 농협금융은 김현진 NH벤처투자 대표 등 7명이 임기를 마친다.

다만 ‘독립성’이 현직 CEO와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과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현직을 연임시키더라도 충분한 검증과 논의를 거친 결과라면 독립적인 판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교체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사회의 독립성이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객관적으로 투표하는 것보다도 누가 미래를 잘 보고 조직을 잘 이끌어갈지 평가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사회가 승계구도에 관해 충분한 논의의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반대로 최악의 결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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