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한지붕 아래 ‘조용한 가족’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이하 대우인터)의 갈등이 결국 표면화됐다.
포스코가 전병일 대우인터 사장을 해임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전병일 사장을 비롯한 대우인터 임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병일 대우인터 사장은 포스코의 해임 결정이 알려진 지난 10일 사외이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 사장은 “(대표)이사직 사임을 포함해 거취에 대해 숙고한 결과, 주주·임직원 등 회사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위해서는 회사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혼란이 조속히 정리되고 경영이 정상화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그 이후 주주와 회사가 원한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퇴를 거부한 것이다.
포스코(005490) 측은 지난달 14일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모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사표를 제출한 만큼 이를 수리하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하는 그룹의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전 사장이 공개 반발한 것을 사실상 ‘항명’으로 받아들있는 것이다.
반면 대우인터측은 지난 10일 긴급회의를 열어 전 사장 해임을 막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우인터에서는 당시 사표가 이번 건과 관련 없으며 법적 효력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표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사회를 통해서만 대표이사 보직해임을 할 수 있다. 보직해임되더라도 사내이사직은 유지 가능하다.
대우인터 직원들은 포스코의 전 사장 해임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전 사장은 전통 ‘대우맨’이다. 1977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대우조선공업을 거쳐 대우인터에 자리를 잡고 지난 17년간 상사업무를 해왔다. 대우그룹 해체의 아픔을 함께 겪은 직원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선배’이기도 하다.
포스코와 대우인터의 갈등 구도는 포스코가 2010년 대우인터를 인수한 이후부터 꾸준히 불거져왔다. 포스코는 철강업의 특성상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강한 편. 반면 대우인터는 ‘세계경영’의 첨병역할을 한 상사답게 개인의 역량이나 판단을 중요하게 보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다.
여기에 포스코에 인수된 이후 ‘푸대접’만 받았다는 직원들의 불만도 쌓인 상황. 대우인터는 지난 2013년 포스코의 주도 아래 대우인터 부산섬유공장을 매각했고, 올 초에는 본사를 송도로 이전하기도 했다. 또 지난 2월부터 대우인터 사명 변경 추진 등으로 포스코와 부딪쳤다.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쌓아온 대우의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포스코에서는 계열사 중 유일하게 ‘포스코’의 이름을 달지 않는 대우인터 사명이 눈엣가시였다.
특히 간간이 언급됐던 대우인터 매각설이 권오준 포스코 회장 취임 이후 재무건전성 강화를 빌미로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면서 대우인터 직원의 불만은 더욱 증폭됐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철강을 제외한 비핵심 사업분야 자산을 처분하는 대대적인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번 대우인터 미얀마 가스전 매각 검토로 인해 촉발된 내부 갈등을 잘 매듭지어야 남은 구조조정 작업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진화되더라도 두 조직간의 문화 차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전현직 임원들이 검찰 수사대상에 오르는 등 대외 악재로 휘청거리고 있는 포스코가 내부 조직 갈등까지 터져나오면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권오준 회장에게 업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