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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비호감 대선…좀비들의 격전장

김미경 기자I 2022.02.08 21:30:30

좀비정치|328쪽|인물과사상사
너를 물어뜯어야 내가 산다
한국 정치 향한 강준만의 쓴소리
대선후보들 비슷한 공약 양산
비호감 대선, 차악 선거 전락
"회색 옷 입는 사람 더 많아야"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감세’ 공약이 20대 대선에서도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주식·가상자산·탈모치료제까지.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세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상황이다. 그중 부동산 관련 세제는 후보의 정책 기조를 가늠할 바로미터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거래세(양도소득세·취득세) 중 어떤 세금을 낮추고 높이느냐가 시장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요 대선 후보의 부동산 세제 공약에서 아직까지 뚜렷한 철학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당장 표심을 얻기 위한 비슷한 공약만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는 평가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라는 수식어가 이를 웅변한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사진=인물과사상사).
진보논객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이 같은 한국 정치를 일컬어 ‘좀비 정치’라고 일갈한다. 소통이 안되고 사고능력이 없으면서 상대를 물어뜯는 공격성을 보이는 ‘좀비’(zombie)와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다.

우리 편은 ‘선’, 상대방은 무조건 ‘악’이며 ‘다름’은 ‘틀림’으로 인식하고, 사실 관계 확인이나 맥락과 입장은 무시한 채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만들어 증오정치를 정당화한다는 게 그가 비판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진영 스피커’를 자처하는 언론과 유튜버는 이들을 지원하고 금전적 이득을 얻는 정치군수업자 노릇을 한다.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강 교수는 극단의 네거티브 정치의 중심에 선 여야 대선후보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놓는다.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 ‘윤석열의 리더십’에서 시작한 한국 정치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인물평은 ‘문재인의 오만과 비극’을 거쳐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진중권, 윤희숙, 박용진, 김의겸 등 좌우진영 대치 전선에서 말과 글을 쏟아내는 이들의 겉과 속까지 두루 살펴본다.

스스로를 어떠한 독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뜻의 ‘만독불침’의 경지에 있다고 자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선 거침없는 ‘깡’의 강점과 약점을 풀어낸다. 강 교수는 이재명의 개인적인 깡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무모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의 민생 공약에 대해선 “아예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작정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가 쏟아내는 공약 중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들은 대부분 돈 뿌리는 일”이라며 “대통령이라면 해결하거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 대해선 그의 ‘입’에 주목했다. 강 교수는 “윤석열은 늘 보기에 딱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모른다.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해 자주 화를 자초한다”고 분석했다. 검찰총장을 지낸 윤 후보가 검사 경력을 내세우며 “당선 즉시 흉악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선 “낡은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검찰공화국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적절한 선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주 52시간제 철폐’, ‘(노동시간) 120시간이라도’ 등 거센 반발을 부른 친기업 행보도 ‘눈치 없는’ 예로 꼽았다.

책은 강 교수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 이후 상황까지 반영해 새로 펴낸 것이다. 강 교수는 맺음말에서 “내가 거의 모든 면에서 존경했던 사람이 특정 정치종교의 광신도로 행세하는 걸 지켜보는 건 불편하다 못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며 이들을 향해 차라리 “당신의 신은 당신의 성전에서만 섬겨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회색의 다양성에 대한 증오가 판치는 가상세계에서 탈출해 다양한 회색 옷을 입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과 기성 정치인들의 폐쇄적이고 내로남불 식 어법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던지는 책은 ‘사이다’처럼 읽힌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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