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에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현재 고용 수준의 90%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정부가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고용조건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 직후 브리핑을 통해 “고용총량의 90%를 유지하도록 한 가이드라인은 유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산업별로, 상황별로 다를 수 있다”며 “일부 가감조정을 있을 수 있으며 이 부분 세부내용 확정 하는 대로 안내하겠다”고 덧붙였다. 업종이나 회사 상황에 따라 90%에서 소폭의 조정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앞서 정부는 40조원의 기안기금을 조성키로 하면서 기업의 고용 안정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1997년 IMF 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등 정부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할 때 에 나선 경우는 많았지만, 고용 조건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노동계는 그동안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고 살아난 후 정규직 직원들이 비정규직으로 되거나 심지어 해고까지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고용조건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고용 총량 90% 유지 조건’은 최근 미국의 항공기업 지원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지난 3월 미국 재무부는 코로나19 피해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 25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지원받은 기업은 9월 30일까지 고용 총량의 90% 유지조건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 항공업 종사자는 75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잡음은 있다. 미국정부로부터 50억달러 지원을 받은 유나이티드항공은 10월 1일 3450명을 감원하겠다는 메모를 직원들에게 보냈다가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정한 시일이 끝나자마자 정리해고에 나서는 셈이다.
기일을 정해 고용을 유지하는 것 외에도 방만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데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특히 항공계의 경우 글로벌 사회로 퍼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노선 축소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기안기금의 첫 지원이 항공과 해운업계로 사실상 결정된 가운데 이들 업계의 구조조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직원 수는 1만8981명, 아시아나가 9144명인 점을 고려하면 항공업계가 기안기금 지원을 받기 위해선 적어도 1만7083명, 8230명의 고용이 유지돼야 한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 유지 조건의 고용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계속 인건비를 대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원받는 기업으로선 재무 구조 악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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