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기업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서 주식시장과 크레딧시장 간 온도차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해 주가가 휘청거리는 경우는 많은 반면 기업 신용등급이나 회사채 발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들은 오너의 갑질 논란이 불거진 대한항공, 대규모 유령주식 사태를 일으킨 삼성증권(016360), 분식 회계 공방이 치열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의 주식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급등락을 연출하곤 한다. 하지만 주가와 별개로 크레딧 시장에서 위치는 아직 공고한 편이다.
28일 마켓인에 따르면 대한항공 신용등급은 논란이 발생한 이후에도 ‘BBB/BBB+’를 유지하고 있다. 등급전망은 오히려 올해 들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라갔다.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회사채 발행도 순조로웠다. 재무안정성이 개선돼 현재 신용등급 유지가 가능하다는 게 당시 신용평가사들의 견해였다.
삼성증권은 유령주식 사건이 벌어진 4월 둘째주 주가가 7% 가까이 떨어졌다. 당시 주가 하락을 겪은 주주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신평사들은 해당 사태에 대해 모니터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 신용등급은 ‘AA+(안정적)’로 변함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이달 들어 주가가 10% 이상 하락했지만 지난달말 19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사모로 순조롭게 조달하기도 했다.
증시와 크레딧 시장의 불일치는 늘 존재했다. 합병 찬반 여부를 두고 논란이 거셌던 삼성물산은 2015년 신평사로부터 그룹 내 중요성 증가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근거로 두 번째로 높은 ‘AA+’를 부여 받은 바 있다. 올해 수주 개선 기대감이 반영된 조선주가 증시에서 부각된 것에 비해 신용등급은 부정적인 전망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이데일리가 실시한 27회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에서도 논란이 한창이던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한 응답자는 전체 3.7%(7명)에 불과했다. 크레딧 시장이 기업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즉각 반영하지 못하고 후행한다는 일부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증시와 채무 상환능력을 판단하는 크레딧시장간 의견차는 필연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용등급 변동이 실제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커 변동에도 신중한 편이다.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기업은 보다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높은 이자 비용을 물어야 한다. 회사채 발행금액은 적어도 수백억원대를 웃돌기 때문에 금리가 조금만 차이나더라도 이자 규모가 달라진다. 신평사가 신용등급을 내릴 때 해당 기업과 갈등을 겪고 ‘등급 쇼핑(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한 물밑 거래)’ 같은 부작용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슈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만한 중대 사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롯데쇼핑(023530)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부른 중국 실적 부진 여파가 신용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진단이 나왔고 방산 비리 이슈로 곤혹을 치렀던 한국항공우주(047810)는 ‘등급 하향검토’ 의견을 받기도 했다. 삼성증권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향후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가 나올 경우 신용등급 또한 하향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한 크레딧시장 관계자는 “목표주가처럼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신용등급을 내리고 다시 올린다면 시장 혼란이 더 클 것”이라며 “오히려 주가 변동폭이 클 때 안정적인 크레딧물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