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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트럼프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던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의 후임에 대북 강경파인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한 데 이어 22일 친한(親韓)파로 분류된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뒤를 이을 새 안보사령탑에 볼턴을 기용한 건 ‘힘의 우위’에서 대북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회담이 불발되거나 진행되더라도 비핵화 합의에 실패한다면, 단박에 군사작전을 포함한 강경노선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할 인물들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북ㆍ미 정상회담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볼턴은 25일 뉴욕의 라디오채널 AM970 ‘더 캣츠 라운드테이블’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시간을 벌려고 협상을 최대한 천천히 굴리려고 할 것”이라며 “그들이 25년간 한결같이 해온 일”이라고 했다. 앞서 23일 자유아시아라디오(RFA)와의 인터뷰에선 “리비아처럼 그들(북한)의 핵무기와 장비를 포장해 테네시주 오크리지 연구소로 넘기는 논의를 해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운반 가능한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위한 위장”이라고 했다. 이른바 리비아식 ‘해외 핵 반출’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게 볼턴의 속내다.
그러나 ‘완전한 핵 폐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은 북한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2003년 핵 포기 후 2005년 국교 정상화를 얻은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6년 후 ‘재스민 혁명’으로 붕괴한 걸 목도한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않다는 점에서다. 볼턴이 다소 무리한 요구로 결국 군사행동을 염두에 둔 ‘명분 쌓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 사설을 통해 “볼턴만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 “볼턴은 이미 위험에 처한 미ㆍ북 정상회담을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내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03년 방한한 볼턴 당시 국무부 차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해 “포악한 독재자”라고 비난하자, 볼턴을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막말을 퍼부은 전례가 있다. 볼턴의 기용은 우리에게도 ‘득 보단 실’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등 한국의 진보정권과 워낙 껄끄러운 관계였던 데다, 문재인정부의 안보코드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