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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英원전 진출 계획…첫삽도 못 뜨고 ‘삐걱’

김상윤 기자I 2017.04.11 17:23:30

탈핵의원모임·그린피스 "영국 진출 중단해야"
"리스크 크고 신재생에너지 투자 위축 우려"
한전 "해외 원전 확대로 수익 내야 전기료 안정"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들어서는 원전 모식도. 뉴젠 홈페이지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한국전력(015760)이 추진하는 영국 원전 수출 계획이 첫 삽도 뜨기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무어사이드 프로젝트의 2대 주주가 사업에서 빠지며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정치권과 환경단체에서도 추진을 중단하라며 압박하고 나서는 형국이다.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모임(대표 우원식 민주당 의원)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11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한국만 유일하게 원전을 늘리면서 세계적으로 원전을 축소하려는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면서 “한전의 영국 원전 사업 확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선주자의 ‘탈핵’ 공약을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터라 한전 입장에서는 사업 추진에 애로를 겪을 전망이다.

한국전력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에 이어 8년 만에 해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총 3.8GW 규모의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에 참여하는 안이다. 이 프로젝트는 컨소시엄인 뉴제너레이션(뉴젠)이 주도하고 있는데, 일본 도시바와 프랑스 엔지가 지분을 각각 60%, 40% 갖고 있다. 도시바는 원전사업에서 수조원대의 손실을 보면서 문제가 발생하자 뉴젠의 지분을 매각하려고 하고 있고, 한전이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전이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을 하려는 것은 국내에서 ‘탈핵’ 움직임이 본격화로 구석에 몰린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려 새 사업을 창출하기 위한 차원이다. 하지만 이날 탈핵모임과 그린피스의 주장은 한전이 국내든 해외든 원전산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라 기존의 주장보다 한발 나아간 얘기다.

한전의 원전사업 확대 추진 중단의 근거는 두가지다. 먼저 무어사이드 프로젝트에서 2대 주주인 엔지마저 지분을 매각한 상황에서 한전이 끼어드는 것은 ‘제2 자원외교 사태’가 될 수 있다는 것. 엔지는 지난달 도시바의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보호에 들어가자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풋옵션을 행사해 40%의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홀로 모든 위험을 떠안게 된 도시바가 이를 한전에 떠넘기려 할 정도로 사업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마틴 그린피스 영국사무소 팀장은 “유럽의 원전은 끊임없는 안전 문제와 부실한 관리에 다른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무어사이드 사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면서 “영국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갈수록 난관에 봉착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원전 정책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터라 리스크가 단순히 크다고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레그 클락 영국 기업 에너지 산업부 장관은 “영국 원전은 전체 에너지 20%를 커버할 정도로 기여도가 큰 만큼 원전 정책을 유지할 방침”이라며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조금 정책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모임과 그린피스 압박은 한전이 저유가에 힘입어 올린 수익을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로 돌리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지난해 60조원의 매출액에 1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대규모 신재생에너지투자를 확대하면서 현재 원전계획을 빠르게 축소하도록 유도하겠다는 판단이다. 김미경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한전이 저유가에 힘입어 올린 수조원의 영업이익은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집중돼야 한다”면서 “자칫 영국 원전 사업에서 손해를 입게 된다면 신재생에너지 확대 움직임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한전이 직접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은 여전히 계류중이라는 점이다. 한전은 전기사업법 제7조의 발전·판매 겸업금지 조항에 따라 자체적인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발전단가가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대거 확대할 경우 전기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문제도 걸림돌이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 낮은 전기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전 입장에서는 해외사업 확대 등으로 수익을 꾸준히 올려야 하는 터라 포기할 수 없다”면서 “신재생에너지도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단계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우원식 의원실 관계자는 “원전 해외 진출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게 아니라 사업 리스크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투자 확대에 나서라는 의미”라면서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직접 진출도 대규모 사업에 한해서 허용하는 안에 대해 의원들 간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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