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 없다" 석달 만에 뒤집혀…날벼락 맞은 홈플러스 일산점[르포]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까르푸 시절부터 호수공원 옆 이 마트를 20년 넘게 이용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안 좋네요. 연말인데 분위기가 썰렁해요.” (60대 일산 주민 A씨)

11일 오전 10시 찾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홈플러스 일산점. 건물 외벽을 덮은 ‘고별SALE 90%’ 대형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문 위에는 “28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바로 아래엔 “홈플러스 온라인을 이용하시거나 킨텍스점과 고양터미널점을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정발산역 2번 출구 인근 게시판에는 눈물을 흘리는 여성 사진과 함께 ‘3층 4층 패션관 마지막 고별정리’라는 포스터가 붙었다.

정발산역 2번 출구 인근 게시판에 붙은 홈플러스 일산점 ‘고별정리’ 포스터 (사진=한전진 기자)

1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홈플러스 일산점 외벽에 ‘고별SALE 90%’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지난 9월 “인수합병(M&A) 성사 전까지 폐점 없다”던 약속이 석 달여 만에 번복됐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는 지난 2일 “현금흐름이 한계에 도달해 지급불능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폐점 보류 15개 점포 중 적자 규모가 큰 일부 점포의 영업 중단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일산점은 서울 가양점, 수원 원천점, 부산 장림점, 울산 북구점과 함께 영업 중단 대상에 포함됐다.

매장 안은 연말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2층 식품매장 입구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었지만, 오가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3층 패션관은 단기 계약으로 들어온 상설 할인매장의 ‘고별세일’ 현수막이 장악했다. ‘5900원’, ‘9900원’, ‘1만 9900원’ 등 가격표가 붙은 땡처리 상품이 늘어섰고, 80% 할인을 내건 아디다스·블랙야크 등 브랜드 의류가 빨간 차단봉 안에 쌓여 있었다. 이불·침구류 코너에도 ‘고별SALE’ 팻말이 즐비했다.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아 보였다.

층별 안내판에는 4층 일부 매장명이 검은 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이미 철수한 입점업체들이다. 1층 한 프랜차이즈 식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B씨는 “일산점이 영업을 중단하다면 다른 지역 롯데마트 쪽으로 옮겨 입점할 예정”이라며 “인테리어비를 또 들여야 하니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장사가 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허탈하다”고 덧붙였다.

식품매장 커피 음료 코너 한 매대가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과자 코너 역시 심플러스 간장새우맛칩·카라멜러스크 등 PB 상품이 빼곡하다. (사진=한전진 기자)

납품 차질의 흔적도 역력했다. 식품 매대 곳곳에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인 ‘심플러스’ 제품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커피 음료 코너는 한 라인 전체가 심플러스 아메리카노·카페라테로 채워졌다. 위생장갑, 지퍼백 등 생활용품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과자 코너 역시 심플러스 새우맛칩과 카라멜러스크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거래처 납품이 줄어든 빈자리를 PB 상품으로 메운 셈이다.

일산점을 찾은 50대 주부 이모 씨는 “이곳은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안 없어진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또 바뀌니 씁쓸하다”고 했다. 이어 “킨텍스점·터미널점은 차 끌고 나가야 해서 간단히 장보기엔 부담된다”며 “연세 드신 분들은 더 막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홈플러스는 앞서 8월 주요 거래처의 거래조건 강화로 유동성이 악화하자 ‘전사 긴급경영체제’에 돌입하며 임대료 협상이 결렬된 15개 점포의 연내 폐점을 결정했다. 이들 점포의 연간 영업손실은 800억원, 이 중 임대료가 7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발로 지난 9월 ‘유동성 이슈 해소와 납품물량 정상화’를 전제로 폐점을 보류했다가, 조건이 충족되지 않자 결국 칼을 빼든 것이다.

M&A도 난항이다. 지난달 26일 마감된 공개 매각 본입찰에는 인수 희망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예비입찰에서 의향서를 제출했던 하렉스인포텍, 스노마드 등 중소업체마저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인 오는 29일까지 새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청산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약 2만명의 직접고용 인력과 8만명의 간접고용 인력, 8000여 입점 업체가 직격탄을 맞는다. 시장에선 민간 자율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폐점을 연기할 당시 납품 원활화와 유동성 개선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이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5개 점포는 이달 말 영업 중단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업 중단시 직원들은 고용 승계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순환 배치하고, 계약이 남은 입점주 분들은 퇴점 절차를 진행하며 보상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일산점 정문에 28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라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