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은 의무, 민간은 당근..정부, 후분양 활성화 팔 걷었다

정다슬 기자I 2018.06.28 18:00:00
그래픽=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정다슬 성문재 기자] 1. 2016년 입주한 서울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방문을 열다가 방문에 붙어있는 옷걸이에 벽이 뚫린 것. A씨는 “한두 푼짜리 물건도 아니고 십억원이 훌쩍 넘어가는 새 아파트인데 문 열다가 벽이 뚫리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 경남 창원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B씨는 요즘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2016년 분양 당시만 해도 ‘청약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던 아파트가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 붙었기 때문이다. B씨는 100대 1에 달하는 청약경쟁률을 뚫었다며 기뻐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러워졌다.

정부가 주택 후분양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2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을 통해서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주택 공급 질서를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라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만큼 이전처럼 선분양제를 통해 아파트 대량 공급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도 깔려있다.

분양을 하고 분양대금으로 시공하는 선분양제도는 지난 30여년간 국내 주택 공급의 대표적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건설사들은 시공대금을 저렴하게 확보해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상품인 아파트를 한번 보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분양 시기와 입주 시기가 2~3년 정도 차이나는 선분양제가 주택 투기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LH 등 공공부문 후분양 의무화…민간에는 인센티브 제공

다만 우리나라 주택의 90%가 선분양을 통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일률적인 후분양제 도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경기도시공사 등 우리나라 공공분양의 90%를 책임지는 이들 세 기관에 대해서만 후분양제를 일정 비율로 도입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사실상 공공분양에 대해서는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신혼희망타운과 주거개선정비사업은 후분양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혼 7년차 이하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을 하게 해주는 신혼희망타운을 후분양으로 할 경우, 현재 정책 대상인 신혼부부들이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네를 전면 철거해 다시 정비하는 주거개선정비사업의 경우, 원주민에게 주는 입주권 전매 시기가 늦춰지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후분양 공정률을 60% 수준으로 정했다. 공정률 60%는 아파트 골조공사 등이 끝난 단계다. 김흥진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공정률 80%는 마감이 끝난 단계로 분양과 입주 사이의 기간이 너무 짧아서 소비자들이 목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공정률 60% 수준이면 단지 내 모델하우스를 마련해 동간 배치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어느 정도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 국토교통부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후분양제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것은 공공택지 우선공급이다. LH는 올 하반기 공급하는 공공택지 중 화성 동탄2 A-62블록과 평택 고덕 Abc46블록, 파주 운정3 A13블록, 아산탕정 2-A3블록은 후분양제를 하는 기업에게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민간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택지대금 중도금에 대해 18개월 거치기간을 부여하고 주택도시기금의 한도와 금리도 완화하기로 했다. 단, 부실시공 등으로 선분양이 제한돼 ‘어쩔 수 없이’ 후분양을 한 사업자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사업은 후분양 인센티브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소비자 지원도 확대한다. 후분양제는 본인이 분양받을 아파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입주 시기가 빨리 도래해 그만큼 단기간에 분양대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통상 선분양제에서는 중도금을 5~6번에 걸쳐 나눠내지만 선분양제에서는 3~4번 정도 낸다. 이에 국토부는 후분양 사업장에 중도금 대출보증을 확대하고 후분양 주택을 구입한 무주택 서민 대상 기금대출 지원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중소 건설사 “후분양 불가능”…공급 감소 우려

민간 건설업계는 정부가 후분양제 활성화를 위해 제시한 인센티브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하겠다는 반응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후분양 기준으로 제시한 공정률 60% 수준은 골조가 완성된 단계로 착공시점으로부터 1년 반 정도 걸린다”며 “후분양 시점까지 중도금 납부를 유예해주면 초기 자금 조달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용도가 낮은 중소업체들은 이조차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소 건설업체 관계자는 “500가구 규모 사업을 시작하려면 100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중소 건설사 신용으로는 후분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영세업체들은 사업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택지에서는 대형사들 위주로 후분양이 일부 가능하겠지만 민간택지의 경우 후분양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분양률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공공택지와는 달리 민간택지에서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분양 리스크가 널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지어놓고 분양할 때 경기가 침체하면 회사의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민간택지는 사업성이 확실히 좋은 곳만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인센티브를 준다고 선뜻 후분양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자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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