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후섭 기자] 기아자동차가 노동조합과의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주가도 고전했다. 1조원 가량의 비용 부담으로 녹록지 않은 영업환경에 실적 우려가 커졌다. 다만 최악의 경우는 피했고 예상했던 수준의 비용 부담으로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단기 반등이 기대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31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기아차는 전날 대비 1300원(3.54%) 하락한 3만5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0.3%로 소폭 하락하며 출발한 기아차 주가는 판결 직전 3만7000원대까지 올라서다 패소 소식에 빠르게 하락 반전했다. 일시적으로 플러스(+)까지 회복하기도 했지만 외국인과 개인의 매도세가 몰리면서 점차 낙폭을 키워갔다.
법원은 이날 기아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며 3년치 4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노조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의 38.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아차 측은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해선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봤다.
기아차가 지급할 비용은 4223억원으로 예상치보다 적게 나왔지만 기대했던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에 실망한 투자자의 매도세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일주일간 기아차 주가가 상승하면서 회사에 긍정적인 판결을 기대했던 심리가 강했으나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는 등 사측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서 상승분을 반납했다”며 “미국시장 침체와 중국시장 부진 등의 업황을 고려하면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번에 나온 판결금액과 대표소송 및 올해까지의 경과분 등을 고려하면 기아차가 3분기에 통상임금 관련 설정할 충당금 규모는 약 1조원 내외로 예상된다. 기아차도 이날 “대표소송 판결금액을 회사 전체 인원으로 확대하고 집단소송 판단금액을 더하면 회사가 잠정적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1조원 내외에 달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기아차는 3분기 1조원 규모의 충당금이 반영되면 적자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기아차의 1분기와 2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3828억원, 4040억원을 기록했다. 이번 판결이 향후 임금체계에 대한 기준점이 되면서 향후 인건비가 증가할 전망이다. 연간 1000억~1500억원 가량의 인건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올해 노사협상에서 통상임금에 대해 합의를 보는 과정에 걸림돌에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다만 우려했던 최대 3조원대에는 한참 못 미치며 시장에서 예상했던 1조원 규모와 별반 다르지 않아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벗어나면서 1조원 규모의 비용은 기아차의 연간 영업이익에서 감당할 수준이라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며 “일단 지난 6년간 발목잡고 있던 이슈가 해소되면서 긍정적으로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항소를 통해 비용 규모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GM이나 쌍용차의 경우 항소 과정에서 신의칙이 반영되기도 했다. 또 기아차의 현금흐름에 대한 우려가 나오나 당장 현금유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고 연구원은 “3분기에 충당금을 설정하면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만 실제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은 항소가 마무리되고 최종 판결이 나오는 내년말이나 돼야 할 것”이라며 “자금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3분기 충당금 반영으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지만 4분기부터 본업의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기아차는 9월 페가스와 K2 크로스 등 신차를 출시하며 스토닉·스팅어의 수출 실적도 4분기에 반영될 예정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중국시장 부진도 4분기 다소 진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9월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가동률 회복을 위해 신차 출시, 마케팅 강화 등 총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통상임금 관련 악재 소멸 이후 단기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