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이 피해자를 헐뜯고 조롱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일부 단체는 이 같은 게시물을 내버려두는 커뮤니티 운영 업체를 찾아 제대로 된 윤리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에선 이른바 ‘n번방’ 사건을 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글이나 영상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피해자가 돈을 벌고자 고액 아르바이트 제의에 속아 범죄 표적이 됐으니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게시물에선 피해자들을 성매매 여성이나 범죄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이 담긴 유튜브 영상은 ‘n번방’이란 키워드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영상 속 출연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자초했다”거나 “동정이 가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2차 가해를 지적하는 영상에서도 피해자들의 잘못을 묻는 댓글이 다수 달려 댓글 창을 닫아놓은 곳도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할 수 있는 게시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졌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 “‘n번방’ 걸리는 애들 심리는 뭐냐? 한심하네”나 “‘n번방’ 피해자들, 자기 몸 찍어서 올린 게 무혐의? 완전무결?” 등 피해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다수 등장했다.
특히 최근 검찰이 피해자들의 육체·정신적 피해 회복을 돕고자 마련한 지원 방안을 발표하자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는 더욱 심해졌다. 2015년부터 모든 범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제도’에 따른 방안이었으나 피해자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비난이 나온 것이다. 일각에선 ‘총선용 정책’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행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한다고도 지적했다. 김현주 한국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러한 글은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활동가는 SNS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업체가 2차 가해 게시물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SNS·커뮤니티 관리자는 게시물을 당연히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 내버려 두고 있다”며 “2차 가해 게시물이 피해자들을 인신공격하고, 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상황을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단체는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업체에 관리 방안을 모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각 대학 소모임 등이 모인 ‘마녀행진 기획단’은 7일 서울 마포구 ‘에브리타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 측을 비판했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다.
이들 단체는 “에브리타임 등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들은 여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해왔다”며 “n번방 사건에 대한 2차 가해·여성혐오성 게시물이 유통되고 있는 현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 단체는 “여성 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제대로 된 윤리규정을 마련하고 문제 게시물을 당장 삭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