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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산업계, 외신 등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4월 중순부터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관세 부과 시점을 다음달 1일까지로 못 박았다. 이에 사실상 나흘 뒤부터 고율의 상호관세와 맞닥뜨려야 하는데, 여기에 반도체에 대한 품목관세 부과 입장까지 재확인하면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관세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원가 부담과 가격 상승 압박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관보에 따르면 조사 대상 품목은 반도체, 반도체 기판, 웨이퍼, 범용 반도체, 최첨단 반도체, 반도체 제조 장비, 반도체 파생 상품 등이다. 또 미국이 232조 품목 조사를 위해 상호관세 예외로 지정한 품목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반도체 웨이퍼 제작·검사 장비 등이다. 이 모든 품목이 사실상 관세 부과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완성차는 미국으로 수출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완제품 특성상 현대차(005380) 등이 바로 타격을 입는 구조다. 그러나 반도체의 경우 공급망 구조가 복잡하다. 범용 메모리 등은 미국으로 수출하지만, 이를테면 SK하이닉스의 대표적인 고수익 상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미국으로 바로 수출하지 않는다. 대만으로 먼저 가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에서 패키징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인공지능(AI) 서버 업체로 간다. 통관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관세를 매길지 불확실하다는 의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달러(한화 약 14조7200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 대비 비중은 7.5%에 불과하다. 다만 대만(15.2%), 베트남(12.7%) 등 중간 국가를 거쳐 최종 수출된 반도체 비중은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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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다만 HBM 등 고부가 제품이 관세 사정권에 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자체가 워낙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탓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HBM의 경우 직접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지 않지만, 어느 단계에서 관세를 부과할지가 명확하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업체뿐 아니다. 삼성전기(009150), LG이노텍(011070) 등 부품기업 역시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인다.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사에서 관세 부담 비용을 부품업체에 전가할 수 있고, 최종 완제품 가격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둔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영향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관세 부과를 고리로 미국 내 신규 투자를 더 압박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 역시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미국 현지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HBM 등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관세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이 미국 내 대형 생산시설을 짓는 것은 높은 인건비, 비자 문제, 노동 규제 등을 감안할 때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결정이라는 점은 고민거리다.
반도체는 가전, 스마트폰, 컴퓨터,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가는 만큼 미국 기업들이 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을 제외하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관세 부과로 정보기술(IT) 기기나 인공지능(AI) 관련 제품을 만드는 빅테크들의 원가 부담만 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반도체 품목관세 부과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HBM 관세를 높게 매길 경우 대량 생산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미국이 AI 칩에서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만큼 HBM에 대한 관세는 부과하지 않고, DDR5 등 다른 반도체에 대해 관세를 높게 부과해 이를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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