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특조위 방해 혐의’ 집행유예·무죄 선고에 분통

박순엽 기자I 2019.06.25 17:35:18

1심 선고 끝난 직후 "선고 결과 말도 안 된다"
민변에서도 "재판부, 세월호 참사 사회적 의미 고려 못해"
선고 결과 나오자 법정에서 고성 내질러…일부 유가족 실신하기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25일 오후 서울 동부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방청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25일 1심 선고가 끝난 직후인 오후 3시쯤 서울 동부지법 법정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조위 설립·활동 방해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는 말도 안 된다”며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최고 책임자가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 조사하는 것을 방해했는데 법원이 이들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광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무지, 무능, 무책임, 관례에 대해 처벌할 방법은 없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우리 아이들의 죽음은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냐”며 개탄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어 “오늘은 비록 실망했지만, 한 번 더 믿어보겠다”면서 “대한민국 법이 얼마만큼 만인에게 평등한 법인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고(故)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씨는 “304명을 수장시킨 (사고) 책임자들이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느냐”며 “희생자들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판결을 다시 해달라”고 말했다.

배서영 4·16연대 사무처장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번 판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다”면서 “이번 선고를 지켜보며 왜 국민들이 사법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시민단체도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정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세월호TF 팀장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행위는 단순히 상급 공무원이 하급 공무원에 권한 없는 행위를 하게 하는 일반 잡범의 범행에 비유할 수 없다”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열망했던 유가족들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은 행위에 대해 집행유예 형식이라는 가벼운 양형을 선고한 건 재판부가 세월호 참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앞서 40여 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날 1심 선고를 지켜보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 노란 티셔츠와 조끼를 맞춰 입은 이들은 재판이 진행되기 전 방청석에서 이 전 실장 등을 큰 소리로 비판하다가 법원 직원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선고 결과가 나오자 유가족들은 법정 안에서 “이게 법이냐”, “당신들이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에 아직 진상 규명을 못 하고 있다”며 고성을 내질렀다. 오열하던 일부 유가족은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유가족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이 전 비서실장 등은 재판정을 떠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비서실장 등이 특조위 활동을 직접적으로 방해한 것이 아니라 하급 공무원에게 세월호 진상규명법에 반하는 각종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는 게 대부분 공소 사실”이라며 “이들의 범행 외에도 다른 권력기관에 의한 정치적 공세가 특조위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특조위 활동이 저해된 부분을 이들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피고인들의 책임에 걸맞은 범위 내에서 양형을 적절하게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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