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3년 전 처음 ‘채식주위자’를 읽었을 때 이미지가 강렬했다. 특히 세 명의 화자가 나오는 연작소설이란 점이 특이했다. 영국에선 연작소설이란 개념이 없어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문으로 옮겨 지난 5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가 방한해 ‘채식주의자’ 번역의 뒷이야기와 한국문학에 대한 견해 및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스미스는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고 “부와 명예를 위해 번역가가 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번역가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채식주의자’는 바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작품이었다”며 “치밀한 구조와 시적인 언어, 강렬한 이미지가 매력적이었고 이번 수상으로 영국 독자들은 한강의 다른 소설을 더 읽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번역에 대한 철학을 묻자 스미스는 “번역가는 원작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며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부분이 불충분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스미스는 “번역가는 원작을 보강하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고 하더라도 보잘것 없는 소설을 명작처럼 포장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의 번역 수준에 대해선 “완벽성은 번역가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추구하는 가치”라며 “그래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내 번역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다만 한국어의 고유한 개별성을 위해 다른 식으로 표현하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라든가 ‘만화’를 ‘코리안 망가’라고 영미권 독자의 이해를 위해 의역한 것이 아니라 한글 표현 그대로를 살렸다는 것.
스미스는 “한국의 고유명사를 타국 문화에서 파생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더니 출판사가 수긍해 줬다”며 “스시나 요가가 영미권에서도 고유명사로 통용하는 것처럼 한국 문학작품을 소개하다 보면 ‘형’이나 ‘언니’란 단어도 곧 고유명사화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런던대에서 한국학 석사,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국문학 번역작업에 발을 디뎠다.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을 받아 ‘채식주의자’ 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 안도현의 ‘연어’를 번역했다. 최근에는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낯은 언덕’을 번역했고 런던에서 틸티트 악시스 라는 독립 출판사를 차려 한국문학 3종을 시리즈로 내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스미스는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는 말에 “한국이 이렇게 노벨상에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 조금 당황스럽다”며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그 작품을 잘 감상하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된다. 상은 상일 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