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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구멍 숭숭’ 비닐봉투 규제…탁상행정 논란

강신우 기자I 2019.04.02 14:58:03

마트선 ‘불법’ 전문점·편의점선 ‘합법’
표준산업분류에만 의존, 형평성 논란
“행정편의주의…규제 대상 넓혀야”

전국 대형마트·백화점·쇼핑몰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 첫날인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계산대에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비닐봉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비닐봉투 드릴까요?”

똑같은 과자류를 샀더라도 어디는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불법’이고 어디는 ‘합법’이다. 이를테면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제공하면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다이소나 편의점에선 유상 제공이 가능하다. 다이소에선 현재 비닐봉투를 소형 50원, 대·특대형은 100원에 팔고 있다.

2일 자원재활용법에 따른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전면금지가 시행된 지 하루만에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환경부는 지난 1일부터 전국 대형마트 2000여 곳과 매장 크기 165㎡(약 50평) 이상의 슈퍼마켓 1만1000여 곳,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에 일회용 비닐봉투 유·무상 제공을 전면 금지시켰다.

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에선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 비닐봉투를 줄이자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형평성에 어긋난 정책 탓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관악구의 한 슈퍼마켓(50평 규모) 사장은 “비닐봉투 유·무상 제공 금지로 재고분 처리 문제나 손님들과의 마찰 등 불편한 상황을 겪어 왔는데 바로 앞 다이소나 편의점에서는 비닐봉투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며 “슈퍼마켓 자영업자가 가장 만만해서 우리만 규제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다이소 관계자는 “규제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전국의 다이소 직영점에 친환경 봉투를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라며 “현재 대형마트에 입점한 유통점에서는 친환경 정책에 맞춰 친환경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형평성 문제는 환경부가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량이 많은 업소를 중심으로 선정 대상을 정한 것이 아닌 단순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를 기준으로 규제 대상을 선정했기 때문에 불거졌다.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자료=환경부)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보면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대규모점포’와 표준산업분류에 따른 도매 및 소매업 중 ‘슈퍼마켓’만 콕 짚어 1회용 비닐봉투 유·무상 제공을 아예 금지했다.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슈퍼마켓은 일정 규모의 시설(165~3000㎡)을 갖추고 음식료품 위주로 각종 생활 잡화를 함께 파는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부가 규제 대상으로 매장 크기 165㎡ 이상을 기준삼은 것 또한 표준산업분류의 ‘슈퍼마켓’ 정의에 따른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표준산업분류에 의한 기준으로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이소나 편의점 등은 슈퍼마켓에 해당하지 않아 일회용 비닐봉투 유상제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표준산업분류에 따라 다이소나 편의점은 도매 및 소매업에 해당하지만 ‘슈퍼마켓’은 아니기 때문에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줄여 환경보호를 하자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행정편의로 표준산업분류상 ‘슈퍼마켓’만 강하게 규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비닐봉투 사용금지 대상 범위를 넓히고 형평성에 맞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전체 비닐봉투 사용량은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약 211억장이다. 이 중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종합소매업에서 전체의 25% 수준인 52억7500만장을, 대형매장(대규모점포)에서 8% 정도에 해당하는 16억9000만장을 각각 사용하는 것으로 환경부는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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