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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앙TV 등 관영 매체들은 연일 ‘항미원조’와 관련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노병들을 조명한 기사를 쏟아내며 한국전쟁을 자국 입장에서 바라본 보도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중국신문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에 방영되거나 상영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영상 콘텐츠는 모두 6편에 달한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그동안 크게 부각하지 않았던 한국전쟁 띄우기에 나선 것은 미·중 갈등 속에 시 주석의 집권 강화를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한국전쟁을 미국의 패권 확장에 맞서 싸워 승리한 전쟁으로 포장해 선전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자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에 나섰다. 경제 패권을 지켜내고 세계 시장에서 미국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에 발목이 잡혀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자 중국정부는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꺼내 든 게 ‘애국주의’다. 중국이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거듭 강조한 것이 홍콩 시민들에 대한 애국주의 교육이었다.
중국인들은 유년시절부터 애국주의 교육을 받는다. 그 시작점은 대게 1989년으로 꼽힌다. 당시 중국에선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중국인들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불확실성 속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 애국주의 교육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태어난 중국 젊은이들이 과거 세대에 비해 강한 애국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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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전날 전시회에서도 “중국 인민지원군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한 인민 및 군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피 흘려 싸워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며 “세계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면서 “항미원조 정신은 귀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고난 극복과 모든 강대한 적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한 적’은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 내에서도 한국과 관계를 위해서 한국전쟁을 너무 부각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을 띄우는 것은 국내 정치를 고려한 부분이 더 크다”며 “중국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하지만 지금 공산당에 더 시급한 건 시진핑의 집권 강화를 위한 내부 단결인 듯하다.
한국 기업들이 BTS 관련 콘텐츠를 삭제하고, 중국 택배사들이 BTS 굿즈 배송 보이콧을 하는 것은 중국 내 여론을 쉽게 잠재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기업들은 이런 극단적인 목소리가 소수라도, 굳이 소비자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번 사건에 대해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자”고 논란을 잠재우고자 했던 발언도 중국 내에서는 반대 메시지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 문화 중심적인 중화사상이 깔려있는데다 중국인의 생각을 통제하고 시각을 좁게 만들고 있는 인터넷 장벽에 갇혀있다.
왕야치우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원은 최근 미국 일간지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 중국에서 온라인 토론은 비교적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며 “그러나 인터넷에 대한 단속이 철저해지면서 최근 몇년간 상황이 급격히 변했고, 정부의 메시지 전달은 점점 더 국수주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중국 안에서는 정부가 통제하는 데 점점 더 능숙해지는 정보 거품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