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정유업계 대표는 한 목소리로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단기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세제를 비롯한 근본적 문제를 해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제마진 악화에 수요 급감…어려움 겹쳐
이날 서울 서린동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간담회엔 조경목 SK에너지 대표와 허세홍 GS칼텍스 대표,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 류열 에쓰오일(S-OIL(010950)) 사장 등 정유 4사 대표가 총출동했다. 연초 에너지업계 신년인사회 이후 석 달 만에 공식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이들 표정은 밝지 못했다.
정유사 수익성을 좌우하는 지표인 정제마진은 지난해 말부터 마이너스(-)를 맴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영비 등을 뺀 값인 정제마진은 지난해 11월 이후 국내 정유사 손익분기점인 4달러대를 밑돌고 있다. 4월 현재 배럴당 -0.7달러에 불과하다. 생산할수록 외려 손해다보니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정제공장 가동률을 최저 80%대까지 낮췄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임원은 급여 일부를 반납하기도 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석유 수요마저 줄고 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수요 20%가량을 차지하는 항공유는 팔 곳을 잃었다. 이동 제한 조치 등으로 휘발유, 경유 등의 수요도 감소했다. 올해 세계 원유 수요 20%가 줄 것이라는 세계에너지기구(IEA) 전망이 나올 정도다.
국제유가는 마이너스에 진입하며 국내 정유사의 재고 평가손실도 수천억원대를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55.9달러 하락한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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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유업계는 1분기 역대 최대 규모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큰 데 이어 2분기 영업환경이 더욱 나빠질 수 있는 만큼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지원을 확대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부담 완화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 유인책 등도 간담회에서 언급됐다.
간담회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조경목 SK에너지 대표는 “우선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조치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항을 건의했다”며 “2014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고 이번에도 업계가 힘을 합치고 정부도 많이 지원해줬기에 슬기롭게 잘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석유수입·판매부과금 90일, 관세 2개월 각각 납부 유예 △석유공사 여유 비축시설 임대 △전략비축유 조기·추가 구매 등을 추진했으며 이날도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납부 3개월 유예 등 추가 지원책을 내놨다.
성윤모 장관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석유시장 효율성과 형평성을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협의하겠다”며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업계와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인 세제 개편 등과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여러 부처와의 이해관계도 있고, 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추가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