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4일 오후 공공재건축 방안을 기본적으로 찬성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가 공공재건축 등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한 지 3시간여만이다. 정부가 지자체와 사전협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급하게 대책을 내놨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김성보 서울특별시 주택본부장은 4일 오후 2시 서울특별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공기관이 재건축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언발란스하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 30분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건축을 통해 5만 가구, 공공재개발로 2만가구를 각각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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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공재건축 적극 찬성 못한다”
공공재건축은 기존 재건축추진 사업에 LH나 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공공참여형 재건축을 통해 5년간 5만 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공공재건축으로 추진 시 조합에는 규제 완화 혜택이 주어진다. 먼저 용적률을 300~500% 수준으로 완화하고, 층수는 최대 50층까지 허용한다. 또 준주거지역 내 재건축시 주거비율 현행 90% 상한을 없애고, 공원설치 의무(재건축시 가구당 2㎡)도 완화한다. 다만 늘어나는 용적률의 50~70%는 장기공공임대나 공공분양 물량으로 기부채납해야 한다. 국토부는 용적률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의 90%까지 환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가 국토부의 발표 이후 공공 재건축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란 입장을 밝혔다. 김성보 본부장은 “서울시의 입장은 민간 재건축은 정상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공재건축으로 가는 것은 방향성 측면에서 적극 찬성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재건축은 민간이 추진해야지, 공공이 개입하는 건 맞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공공재건축 용적률 상향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국토부는 “공공재건축 추진 시 종상향 등을 통해 용적률 최대 500%와 50층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국토계획법상 일반주거(2종·3종 일반) 지역의 경우 ‘35층룰’을 적용받는다. 아파트가 들어선 곳은 통상 일반주거 지역으로 규정상 35층 이상을 지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공공재건축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 법에 걸려 35층 이상 지을 수 없다는 것으로, 정부의 ‘50층 재건축 아파트’ 추진이 어렵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층수와 관련해 주택 공급안 논의 당시 서울시의 입장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국토부는 준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을 변경하면 용적률 상향이 가능하고, 50층 아파트도 지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상업 시설 등을 함께 지을 수 있는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지역이 변경되면 용적률 최대 500%·50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현실적으로도 종상향(용도지역변경)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반시설 평가, 주변 환경 평가 등을 기준으로 종상향을 까다롭게 결정해왔다”며 “재건축 아파트라고 해서 무턱대고 종상향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정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도 “현실적으로 종상향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국토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으로 일반 주거 지역의 용적률을 올린다해도, 용도지역에 걸려 50층이 불가능 한건 매한가지다.
◇“지자체도 안 믿는 정책 누가 믿나”
서울시와 정부의 마찰음은 공공재건축 예상물량에서도 드러났다. 정부가 추산한 공공재건축 예상 물량 5만호에 대해 서울시는 ‘아는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 주택본부장은 “정부가 공공재건축을 통해 5만 가구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재건축으로 변경 가능한 대상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정부의 불협화음을 두고 ‘졸속 대책’의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와 합의가 안 된 정부의 정책은 시장에 ‘협의도 안 된 설익은 정책’이라는 시그널을 준다”며 “그린벨트에 이어 공공재건축에서도 지자체와 불협화음을 내는 것을 보면 정부가 공급 대책을 급하게 내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